'이용구 폭행 영상' 보고도 못 본 척한 경찰… 검찰 수사 영향은

입력
2021.01.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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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장면 담긴 영상 보고 "못 본 걸로…"
경찰, 수사관 대기발령... 진상조사 착수
경찰 직무유기·이용구 특가법 수사 탄력
이용구 측 "영상 수사기관에 제출돼 다행"

이용구(57)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확인한 경찰관이 "못 본 것으로 하겠다"며 수사의 핵심 증거를 일부러 누락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수뇌부까지 나서 부실수사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뒤늦게 담당 경찰관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영상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이 차관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은 24일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서초경찰서 담당 경찰관이 (이 차관의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면서 "담당 경찰관을 24일자로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은 아울러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 지시에 따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장을 단장으로 하고 13명으로 구성된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을 편성해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조사결과에 따라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담당 경찰관이 해당 영상 존재 여부를 알게 된 시점 △팀장·과장·서장 등 서초서 지휘라인 보고 여부 등 관련 의혹을 철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TV조선 등에 따르면 택시기사 A씨가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담당 경찰관에게 이 차관이 택시 안에서 A씨를 폭행하는 휴대폰 영상을 제시했음에도, 경찰관은 "영상은 그냥 안 본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부실수사 의혹에 대한 경찰의 공식 해명과도 배치된다. 경찰은 그 동안 "택시 안 블랙박스가 녹화되지 않아 피해자 진술 외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직접 증거가 없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내사 종결했다"고 밝혀왔다.

디지털포렌식(PC·휴대폰 등에 남아있는 범죄증거를 찾는 수사기법)을 통해 이 차관의 폭행 영상을 확보한 검찰은 해당 경찰관의 직무유기 혐의를 규명하는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이동언)는 최근 택시기사 A씨의 블랙박스를 수리했던 블랙박스 복구업체 관계자와 경찰관 사이의 통화 및 문자메시지 내역도 확보, 경찰관이 언제부터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아울러 △경찰관이 자체 판단에 의해 증거를 누락한 것인지 △이 차관의 청탁이 있었는지 △경찰 상부 등 제3자 개입이 있었는지도 규명할 방침이다.

이 차관 측 변호인은 이날 논란이 확대되자, 별도의 입장문을 냈다. 변호인은 "블랙박스 영상은 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면서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검찰 재조사를 받는 등 고통을 겪고 계시는 택시기사분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면서 사죄의 뜻도 함께 전했다.

경찰의 '이용구 봐주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차관 수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이번 수사의 본류인 이 차관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 영상 내용도 판단 근거로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서초경찰서는 이 차관에게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인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해 내사 종결했지만, 운행 중인 차량의 운전기사를 폭행했을 경우엔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 관계 없이 특가법이 적용된다. 검찰은 영상 안에 담긴 정보와 사건이 발생한 당일 택시의 위성항법장치(GPS) 기록을 대조해, 폭행 당시 택시가 운행 중이었는지 판단할 계획이다.

이현주 기자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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