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현장 학문입니다. 끊임없이 현장을 찾아가서 듣고, 질문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정책 제안은 물론 민원을 내는 주민은 모두 저에게 선생님입니다.”
오규석(63) 부산 기장군수는 ‘기장의 큰 머슴’을 자처한다. “떡 벌어진 어깨에 뭉툭한 얼굴”도 그렇지만, 1년 365일 푸르뎅뎅한 작업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온 관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딱 ‘머슴’이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민선 1기 초대 기장군수를 지낸 뒤 2010년부터 내리 3선 군수를 지내면서 14년간 고집하고 있는 그의 스타일이다.
'발로 뛰는 전략'은 성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와 한국지방자치학회가 공동주최한 ‘전국지자체평가’에서 2018년, 2019년 연거푸 전국 1위(기초단체)를 했다. 최근엔 서울대 행정대학원 커뮤니티웰빙센터가 전국 229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살기 좋은 지역’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지난 연말에는 공무원 승진인사 개입혐의(직권남용) 소송에서 1, 2심 유죄 판결을 뒤엎는, 대법원 무죄 선고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단체장 인사권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역과 멸치로 유명했던 기장군을 모범적인 행정서비스와 재정력이 뛰어난 지자체로 일군 오 군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달 14일 그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5년간의 기나긴 소송에서 최근 이겼다. 소감은.
“비로소 식물군수에서 벗어났다. 법대로 했을 뿐인데, 재판까지 받으면서 너무 억울해 화병에 걸리기도 했다. 사실과 법리를 밝혀 준 대법원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분명 지방자치법이 보장하는 ‘단체장 인사재량권’ 범위 내에서 권한을 행사한 것이었는데도 행정안전부는 담당 직원을 징계했고, 검찰은 저를 기소했다. 단체장 인사권 재량은 대법원 판례에도 있는데, 지금까지 운영이 잘못된 것이다. 중앙정부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 군수는 지난 2015년 공무원 승진 대상 인원을 늘려서 인사위원회에 심의하게 했다는 이유로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1심과 2심은 오 군수의 혐의를 인정해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승진임용은 단체장의 고유권한으로 재량적 판단은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이상 폭넓게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인사권에 대한 단체장의 권한과 범위를 넓게 인정한 것이다.
-부군수 임명권 반환, 기초자치단체선거 정당공천 폐지, 사용핵연료 관리방안 마련, 골프장 건설 반대 등 숱한 이슈에 1인 시위로 대응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나.
“공문을 아무리 보내고 호소해도 응답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방자치권을 보장하는 법이 엄존하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과거 관선시대에나 있던 관례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4선 군수로서, 그간 스스로 가장 내세울 일은 무엇인가.
“군수 취임 후 토·일·공휴일, 휴가 없이 현장에 주민들과 함께 있었다. 이렇게 돌며 기록한 민원수첩이 현재 78권째다. 여기에 적힌 주민들의 정책 제안과 민원사항들은 군정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길이 된다. 야간 군수실에 찾아온 인원이 2만2,000명이 넘고 민원 건수는 1만 건이 넘는다.”
그의 이 같은 성실함은 일찍이 주목됐다. 1996년 KBS가 만든 30분짜리 프로그램 ‘부산 큰 머슴의 25시’, SBS의 ‘민선군수 25시’ 모두 오 군수를 집중 조명한 내용이다. 현장밀착 행정은 위기 때 빛을 발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정부가 마스크 확보하느라 허둥댈 때 기장군은 전 군민에게 세대당 10장씩 지급했다. 그 덕에 인구 16만7,000명, 전국 군단위 지자체 중 인구 밀도 가장 높은 기장군에서 ‘마스크 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어떻게 마스크를 확보할 수 있었나.
“저와 부군수, 직원들이 직접 마스크 생산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얻어낸 결과였다. 마스크 부족은 공장 생산 인력 부족이 빚은 난리였다. 생산라인이 있어도 일손이 없어 라인을 못 돌리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긴급하게 생산 현장 자원봉사자를 모아 투입했다. 주말에는 군 간부까지 달려가 손을 보탰다. 우리가 직접 생산현장을 오가며 뛰니, 업체도 감동했던 것 같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가 돋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끝없이 강조하는 청렴이다. 초대군수 시절엔 월급 통장을 아예 비서에 맡기고, 그 돈으로 사랑방 진료실에 쓸 약과 침구(鍼灸)를 구입했다. 연 5,200만원에 이르는 군수 업무추진비는 2017년부터 한 푼도 편성하지 않고 있다. 기자들과의 식사비도 n분의 1씩 분담하는 군수를 보고 허투루 세금을 쓸 직원들은 없다.
-‘업무추진비 0원’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필요하지 않은가.
“취임 후 과거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보니 대부분 직원 경조사비였다. 경조사비는 사비로 처리하고 과감히 삭감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방관이 백성을 사랑하는 길은 절용(節用)이라고 했다. 혈세 한푼 쓰는 것을 무섭게 여기지 않는 관리는 관리가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2014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전국 226명의 기초단체장 당선인 중 선거비용을 가장 적게 썼다. 2014년에는 3,577만원, 2018년에는 3,213만원을 지출했다. 법정 한도액(1억3,300만원) 4분의 1 수준이다.
2010년 이후 세 차례 연속 기장군수 자리에 오르는 데 그는 조직, 당의 힘을 빌린 적이 없다. 부산 지역 유일의 무소속 단체장 기록도 갖고 있다. 1995년 군수 첫 출마 때 당시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 뒤 1998년 해운대구·기장군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2000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에는 같은 지역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2년 16대 대선 때 잠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2010년 이후 기장군수 3선은 소속 정당 없이 일궈냈다.
-무소속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4년 고향(기장 철마면)에서 한의원 개원 1년 만에 민자당 젊은 피(당시 37세)로 영입돼 당선됐다. '상도동 민주계 막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군수 재임 중이던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이 YS 허수아비 화형식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 탈당했다. 주변에서 당에 남아달라고 말렸지만 YS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무소속으로 남았는데 일을 하다 보니 기초단체장은 차라리 정당공천을 받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공천 폐지 1인 시위를 벌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기초단체에서 그 지역에 맞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기초의회가 반대하면 방법이 없다. 2014년 기장군이 고교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추진했지만, 의회 반대로 실제 시행까지 3년이 걸렸다. 당리당략에서 벗어난, 지역주민을 위한 정책을 위해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교사와 한의사를 지낸 그는 독특한 이력만큼 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행보는 매우 정치적이기도, 때론 저돌적으로 보인다.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2019년 군의원들과 갈등을 빚으며 ‘돈키호테 군수’로 불린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두둑한 뱃심과 한결같은 성실성은 기장군을 경쟁력 있는 도농복합도시로 올려놓은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는 3선 연임제한에 걸려 내년 6월 기장군수 선거에 나올 수 없다. 퇴임 후 계획에 대한 물음에 오 군수는 “오늘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활동무대 기장군이 좁아 보일 것 같다.
□ 오규석 군수는
1958년 기장군 철마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철마중과 기장고를 나왔다. 진주교대 졸업후 9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 중 대구대 행정학과 야간에 편입해 졸업하고, 1984년 학력고사를 쳐서 동국대 한의학과에 진학, 총학생회장과 전국한의예과 학생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교사시절 만난 부인 강미숙씨는 현재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두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