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무슨 관리를 해준다고요?
국립해양박물관의 주차관리원 이모(58)씨는 5개월째 맨 몸으로 부산 영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인 주차관리소가 지난해 9월 초 태풍 ‘마이삭’으로 부서졌기 때문이다. 주차장 30m 앞이 바다인데다 올해는 북극발 한파 등으로 유난히 추워 양말과 장갑 두 켤레씩, 점퍼 두 벌로 중무장하지만 몸이 덜덜 떨린다. 너무 추울 땐 자신의 차 안에 들어가 대기하지만 차 안도 추운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차관리소는 왜 다시 설치되지 않는걸까. 이씨는 국립해양박물관으로부터 운영 위탁을 받은 회사가 시설·주차관리 등을 재위탁한 용역업체 소속. 서울에 있는 이 용역업체는 ‘보험사와 시설물 파손에 대한 협의가 안 됐다’며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이씨는 언제까지 추위, 더위와 싸우며 일해야 할지 기약도 없다.
한국일보가 취재한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 중에는 이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많았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초소에 선풍기가 없어 주민들이 버린 선풍기를 고쳐 썼고, 땡볕에서 대기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그늘막 설치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대부분 용역업체는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먼 곳에 있고, 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달이 ‘관리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뗀다. 노동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돈 번다" "사람 장사를 한다"고 분노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 업체들의 운영방식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김상훈(가명·33)씨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방사선 안전관리원으로 일한다. 한수원에서 용역업체에 주는 1인당 용역단가는 1년에 1억2,000만원. 용역단가는 3가지로 구성된다. 상훈씨 노동의 대가인 '직접인건비'(5,000만원), 사무실 운영 등에 사용하는 '제경비'(5,500만원), 방사선 안전 관련 연구나 기술개발에 사용하는 '기술료'(2,100만원).
하지만 상훈씨는 용역업체가 이 큰 돈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방사선 관리구역 내에서 작업할 때 쓰는 설비와 장비, 작업복, 장갑 등은 전부 한수원에서 제공해줘요. 용역업체는 관리구역 밖에서 사용하는 안전모, 안전화, 장갑만 주고 사무실 집기같은 거 사고요. 1,000만원짜리 안전화 신는 것도 아니고 1년에 1인 당 제경비가 5,500만원이 든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기술료는 용역업체가 연구소 운영에 쓴다고 하는데, 연구소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일하니까 업체가 이 돈을 받는건데, 우리한테 지원하는 건 거의 없어요. 용역단가의 절반은 회사가 그냥 가져가는 거예요." 해당 용역업체는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해명을 거부했다.
그래서 이 업계에선 용역업체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부른다. 원청의 계약을 따내기만 하면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훈씨가 소속된 용역업체가 거느리고 있는 방사선 안전관리원은 61명. 이들의 제경비와 기술료를 합하면 1년에 46억원이 넘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장비 비용까지 착복하는 경우도 많다. 용역업체 소속인 이모(30대)씨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공장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한다. 원청에서 주는 돈에 안전장비 비용이 포함돼 있지만, 분진과 쇳가루가 날리는 곳에서 일하는 그는 한 번도 마스크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업체는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구하기가 힘들다”며 분진이 가득한 곳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원래 주던 3M 마스크(1장에 1,400원) 대신 1장에 700원(인터넷 최저가)짜리 마스크를 줬다. 인터넷에서 3M 마스크 구매가 가능했지만 사장은 거래처가 아니라며 반년 넘게 700원짜리 마스크를 지급했다. 결국 동료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자 원래 쓰던 3M 마스크로 바꿔줬다.
이씨는 단언했다. “언론에서 난리 안 났으면 절대 마스크 교체 안 해줬을 거예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에선 여전히 이런 일이 계속된다.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가명·69·남)씨는 한 달에 한 켤레 받는 작업용 장갑을 두 켤레로 늘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고, 하루 수백명의 손님을 대면하는 은행 경비원 임성훈(가명·36·남)씨는 코로나19 유행 후 한 번도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했다.
은행 경비원 강지선(가명·39)씨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용역업체로부터 업무 범위를 설명 듣지 못한 채 전임자에게 인수인계 받은 대로 일했다. 매일 아침 첫 업무는 지하주차장에서 지점장 차 세차하기. “겨울에는 물 뿌리면 물이 어니까 입김 불어가면서 차를 닦았어요. 세차 마치면 탕비실이랑 은행원들 책상 정리했고요. 물건 사서 오라고 하면 마트도 갔는데 업무용 차량이 없어서 마트에 양해 구해서 카트에 실어서 왔다갔다했어요. ATM 수리, 현금 보충도 하고 은행 문 닫으면 은행원들이랑 정산 업무도 같이 했어요.”
이 중 경비원 업무에 포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원청의 부당한 업무지시였고, 불법파견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오는 용역업체 소속 경비지도사는 은행의 부당행위를 지적하기는커녕 “은행원들 말 잘 들어”라며 은행 편만 들었다.
“중간에서 돈을 떼가면 최소한의 보호막 역할은 해줘야 되잖아요. 근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그저 사람 꽂아놓고 돈만 받아가는 거예요. 완전히 방치돼 있어요. 낙동강 오리알인거죠.” 지선씨가 말했다.
일터 갈등의 책임도 늘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은행 경비원 한재민(가명·46)씨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동전 포장. 버스, 택시회사가 은행 근처에 있는데다 자판기업체에서 오는 날이면 빵으로 점심을 떼우며 일했다. 참다못한 재민씨가 은행에 ‘일주일에 2,3회 요일을 정해 동전을 받으면 어떠냐’고 건의하자 은행은 용역업체에 컴플레인을 했다. ‘동전 포장 등 현금 관련 업무는 하면 안 된다’고 교육했던 용역업체는 되레 재민씨에게 “융통성이 없다”고 나무랐다. 재민씨는 “회사는 늘 은행 말만 듣고 나한테는 반론 기회조차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권고사직 당했다. 주민 민원이 접수된 아파트 경비원을 경위 조사도 없이 해고하는 것과 똑같다.
사용주(원청)-고용주(용역업체)-노동자로 구성되는 ‘삼각 고용’구조는 아주 간편하게 노동자를 ‘동네북’으로 만든다.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는 순간 원청의 불법행위, 용역업체의 무책임은 ‘그래도 되는 일’이 되고, 계속 반복된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경리로 일했던 김지연(28)씨는 파견직이었다. 한 온라인 채용사이트에서 연봉 3,000만원으로 올라온 구인 정보를 보고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했다. 그런데 첫 월급이 170만원이었다. 파견업체에 문의했더니 “구인 정보에 우리가 가져가는 수수료까지 포함된 금액을 잘못 적어서 그렇다”며 “원래 다 이렇게 수수료를 뗀다”고 말했다. 3,000만원을 12개월로 나누면 250만원, 여기서 4대 보험 회사부담분(약 20만원)과 노동자 부담분(약 20만원) 등을 빼면 파견업체가 매달 수십만원을 ‘수수료’로 챙기는 거였다.
하지만 복리후생은 전혀 없었다. “그냥 일을 소개해주는 정도였어요. 2년 넘게 일하면서 월급 넣어준 것밖에 없었어요. 건강검진도 한 번도 못 받았고요.” 지연씨의 말이다.
한 중견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시은(가명·27)씨도 비슷하다. 파견회사 담당자를 원청에서 면접 볼 때 한 번,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한 번 만났을 뿐이다. 파견회사는 가본 적도 없다. 그 외에 1년에 두 번 명절에 스팸세트를 받는 게 전부다. 하지만 파견회사는 시은씨 월급(168만원)의 10%에 해당하는 17만원 정도를 관리비로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업체들은 적당한 범위를 넘어서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를 상당 부분 가져가는데도 독립적인 회사로서의 복리후생, 고충 처리, 업무 지원 등의 역할을 거의 하지 않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업체는 ‘관리비’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중간착취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