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통령은 어디에

입력
2021.01.1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긴급 보도자료'라 이름 붙은 문자 메시지 알림이 왔다. 큰일이라도 터졌나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후보 간 비방과 반박의 되풀이였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지켜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이기흥 대 반(反) 이기흥' 구도로 점화된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은 급기야 후보 간 고소ㆍ고발로 치달아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다.

'반 이기흥' 세력의 단일화 및 후보등록 과정은 유력 후보의 막판 포기, 대타 등장, 단일화, 번복 재출마 등 말 그대로 촌극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4명으로 압축된 후보들의 정책 토론회는 더 가관이었다. 마치 여의도 정치판을 옮겨 놓은 듯한 네거티브 선거전의 극치다. 정책은 온데간데없고 타깃은 오직 이기흥이었다. 강신욱 후보는 시작부터 이기흥 후보의 골프 시타와 로비의혹을 사진과 함께 제시했다. 이종걸 후보는 5선 국회의원 출신답게 토론 주제를 무시한 채 이기흥의 범죄경력과 딸의 체육단체 위장취업 의혹을 제기했다. 흥분한 이기흥 후보는 허위라며 핏대를 세우고는 토론회 직후 선거관리위원회(및 운영위원회)에 이종걸 후보의 발언을 제소했다. 지난 12일에는 이종걸과 이기흥 후보가 각각 서로를 '직권남용 및 공금횡령'과 '무고'로 경찰에 고발했다.

'타도 이기흥'에 혈안이 된 여당의 중진(안민석 의원)이 '반 이기흥' 진영을 총지휘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체육계에선 "여당 의원이 순수 아마추어 체육단체장 선거에까지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불만이 크다. 이번 선거의 화두는 '이기흥 4년'의 심판이었어야 했다. 재임 시 발생한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 사건'과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체육계 혁신과 인권 보호에 소홀했다는 감점 요인이 크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체육계 개입으로 변질되면서 이기흥 후보를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이종걸 후보는 이를 의식한 듯 14일엔 갑자기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체육인들에게 1,000만원씩 피해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체육인들의 반감을 사며 수세에 몰리자 내던진 '선심 공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920년 '건민과 신민, 그리고 저항'을 내세우며 극일의 구심체로 출범했던 조선체육회는 기라성 같은 교육자, 민족지도자, 독립운동가들이 회장을 맡아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대한체육회로 이름을 바꾼 후에는 정계 거물들이 회장을 거쳐갔다. 민관식(22대) 김택수(24대) 회장은 태릉선수촌을 만들고 체육인들의 포상제도를 확립하며 체육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노태우(28대) 김운용(31~33대) 이연택(36대) 회장도 한국 스포츠의 세계화에 이바지했다. 표심에 좌우되는 정치인일지라도 그들처럼 체육 발전에 신념이 있다면 환영이다.

2016년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아울러 출범한 통합 대한체육회의 새 수장은 새로운 100년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떠안고 있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코로나19 때문에 사상 첫 온라인 투표로 진행된다. 대한체육회 대의원과 선수 지도자 동호인 중 무작위 선정된 2,170명이 한 표씩 행사한다. 산으로 가고 있는 '체육대통령' 선거에 유권자들의 고심도 깊어질 듯하다.

성환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