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못지 않게 양자물질도 중요하죠"

입력
2021.01.14 17:00
23면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저술-교양 부문 수상자 
'물질의 물리학' 한정훈 교수

“아마도 영화 ‘나홀로집에’ 보셨던 분들은 주인공 맥컬리 컬킨(케빈 역) 옆집에 살던 무서운 할아버지를 기억하실 거에요.” 지난 7일 서울 내수동 교보문고 아크홀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된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 교양 부문 수상자인 ‘물질의 물리학’ 저자 성균관대 한정훈 교수는 강연 도중 불쑥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납치해 해코지를 한다고 수군댔죠. 하지만 주인공이 할아버지랑 얘기를 해보니, 그는 아들과 손자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며 외롭게 사는 평범한 노인이었을 뿐이었죠.”

한 교수는 영화 속 할아버지의 처지가 물리학과 비슷하다고 아쉬워 했다. 막상 본질을 알게 되면 “무서울 게 없는데”, 사람들은 그저 모른다는 이유로 “다가서지 못하고 두려워만 한다”는 점에서다.

그가 책을 쓴 건 당연히 이 막연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다. ‘물질의 물리학’은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분야인 응집물리학을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교양서다. 도대체 물질이란 무엇인지, 빛도 물질인지, 질량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책은 막힘 없이 풀어준다. “다들 많이 물어보시는데 20세기 원자론은 간단해요. 모든 원자엔 가운데 원자핵이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고, 그 원자핵 주변을 전자가 돌아다닌다. 세 마디면 요약 가능하죠.”


물리학에 관해선, 거침 없지만 한 교수에게도 도통 풀리지 않는 문제는 있다. 물리학이 대접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특히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더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데 AI 기술력만큼이나 양자정보, 양자컴퓨터 발달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그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큽니다.” 한 교수는 20세기가 양자역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엔 양자얽힘의 세기가 될 거라 전망하며, 양자물질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다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의 대중화가 한층 더 무르익기 위해서 한 교수는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소화한 과학 교양서가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저도 어렸을 때 코스모스와 같은 외국의 대중과학서를 읽으며 자란 세대이지만, 아무리 좋은 번역서라고 해도 모래가 살짝 들어가 있는 듯한 껄끄러움은 영 가시지 않더라고요.”

다행이 최근 한국 과학계엔 한 교수보다 앞서 대중 독자들과 호흡하며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역할 하는 지식인 집단이 많아졌다. 그래서 바로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12명의 전문가들로부터 각자가 전공하는 물질 이야기를 들어보는 이른바 물질의 재발견 프로젝트다. “한국 과학의 저력이 이만큼이나 된다는 걸 더 많이 알려나갈 계획입니다. 그러다 보면, 일상 생활 속 친구나 가족끼리 대화할 때 양자 얽힘을 주제로 삼는 게 자연스러운 날도 오지 않을까요.”

강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