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이 한국 드라마 시장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중국 유명 IT 기업등이 한국 드라마 판권을 쇼핑하듯 잇달아 사들이는가 하면, 한국 드라마에 간접광고(PPL)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 2017년 중국 정부가 내린 한국 콘텐츠 규제 조치 '한한령'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분명 이례적 흐름이다.
이 변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차이나머니가 세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한국드라마에 투자해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려 다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한국 드라마에 '중국색'이 묻어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방송가 최대 기대작으로 '한류 스타' 전지현이 출연하는 tvN 드라마 '지리산'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다. '중국판 넷플릭스' 아이치이가 드라마 해외 판권을 먼저 낚아챘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16회로 방송 예정인 '지리산' 총 제작비는 320억원. 경쟁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해외 OTT사가 한국 드라마의 해외 판권을 살 때 보통 제작비의 50% 이상을 지불하는데 김은희 극본·이응복 연출 등 작품의 화제성을 고려했을 때 아이치이가 250억원 이상을 주고 해외 판권을 샀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서비스 지역 계약 조건이다. '지리산' 제작사인 에이스토리에 따르면 아이치이의 '지리산' 온라인 전송에서 한국과 중국은 제외됐다. 중국 회사가 큰돈을 들여 한국 드라마 판권을 샀는데 정작 본토에서 드라마를 내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한령으로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치이는 '지리산' 판권 구매 경쟁에 왜 뛰어들었을까.
동남아시아 지역을 노린 전략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아이치이는 2019년 6월부터 동남아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넓혔다. 해외 구독자 확보를 위해 아시아에서 경쟁력이 높은 한국 드라마 선점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아이치이는 MBC '나를 사랑하는 스파이', SBS '편의점 샛별이'(2020)와 tvN '간 떨어지는 동거'(2021) 등 지난해에만 30편이 넘는 한국 드라마의 해외 판권을 사들였다. 중국의 또 다른 IT 기업인 텐센트는 '부부의 세계'를 제작한 국내 드라마제작사 JTBC스튜디오에 최근 1,000억원을 투자했다. '중국 IT 공룡'이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콘텐츠 확보를 위한 '고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덩치 큰 중국 기업들도 정작 본토에선 방영되지 않는 한국드라마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 유명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과 식품 브랜드 즈하이궈는 방송중인 tvN 드라마 '여신강림' 제작을 지원했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한국 드라마에 중국 브랜드가 노출되면 인터넷으로 본토의 젊은층에서 역으로 화제가 되기 때문에 그 효과를 노려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따랐다. '여신강림'에선 여고생인 임주경(문가영)과 강수진(박유나)이 편의점 밖 테이블에 앉아 중국산 인스턴트 훠궈(중국식 샤브샤브)를 먹는 장면이 지난 6일 방송돼 황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 편의점에서 중국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고등학생이 어디 있느냐' 등 현실과 동떨어진 PPL이 드라마 몰입을 방해했다는 지적이었다.
CU, GS25, 이마트24 측에 본보가 확인한 결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중국 인스턴트 훠궈 제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장면을 불편하게 여긴 일부 시청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여신강림' PPL 관련 민원(8일 기준 5건)을 넣었다. 제작진이 무리하게 중국 제품을 드라마에 노출한 탓이다. '여신강림'에선 중국처럼 골목에 홍등이 줄줄이 걸려 있는 낯선 풍경도 연출됐다.
중국 제품 PPL 관련 잡음에 드라마제작사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미니시리즈 기준 회당 평균 제작비는 요즘 6억원으로, 2010년대 초반 2억원에 비해 3배가 늘었다. 중국과 일본의 '공식' 한류 시장이 꽁꽁 언데다 코로나19로 제작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차이나머니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게 제작사들의 입장이다. 10년 넘게 드라마 기획을 해온 PD는 "간접광고를 녹이는 방식을 좀 더 고민해야겠지만, 중국 PPL은 수입이 아닌 일종의 수출"이라며 시청자의 이해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