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에서 3000까지'... 마흔한 살 코스피가  걸어온 길

입력
2021.01.0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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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지수 100 첫 집계 이후
1000→2000까지 18년 걸려
동학개미가 꿈의 삼천피 주도


코스피가 2,000선을 처음 돌파한 건 2007년 7월 25일이었다. '코스피 2,000시대' 개막에 온 나라가 들떴고, 3,000선 돌파가 머지않았다는 장밋빛 전망도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3,000선 고지를 밟기까지 무려 13년 5개월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코스피는 지루한 횡보를 이어가며 일명 '박스피(박스권+코스피)' 장세를 전전하며 투자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란 전대미문의 위기가 코스피에 기회가 됐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급격히 불어난 유동성을 배경으로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며 코스피를 한번도 가지 못한 3,000선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IMF에 9.11까지'... 성장 할 만 하면 터지는 위기들

6일 코스피는 개인 순매수에 힘입어 장중 3,000선을 돌파했다. 1980년 1월 4일 코스피가 지수 100을 기준으로 집계된 지 41년 만의 기록이다. 1983년 1월 4일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 출범 당시 첫 종가는 122.52였다.

코스피는 이후 빠르게 내달렸다. 1987년 8월 사상 첫 500을 넘어선 데 이어, 약 1년 반 만인 1989년 3월 1,000선까지 뚫으며 '네 자릿수' 시대를 열었다. 단기간 지수가 급등하면서 2,000시대가 올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속출했다.

하지만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2001년 미국 9.11 테러 등 국내외 금융시장을 덮친 대형 사건들은 때마다 코스피 발목을 잡았다. IMF 위기가 온 나라를 집어삼킨 1998년 6월 코스피는 280까지 곤두박질쳤다. 1990년대 들어 기록한 역대 최저치다. 9.11 테러 이튿날인 2001년 9월 12일엔 코스피가 하루 만에 12% 폭락하기도 했다.


2000선에 갇힌 '박스피' 오명의 역사

코스피가 2,000선을 넘은 건 2007년 7월, 1,000 돌파 후 무려 18년이 지난 뒤였다. 경제 회복 기대감과 중국 경제의 고성장 등에 힘입어 '2,000시대'를 열었지만, 그마저도 한 달 뒤인 8월 1,600선까지 밀렸다. 이후 점차 내리막길을 걷던 코스피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된 2008년 10월 900선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세계 반도체 호황 등을 등에 업고 2,500이란 문턱을 넘은 2017년 10월 이후에도 코스피는 3,000선에 좀처럼 다가가지 못했다. 2,000선을 넘긴 2007년 이후부터 10년 넘게 박스피 장세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크고 작은 대내외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 소수 대형주 쏠림현상 등이 번번이 코스피의 덜미를 잡았다. 한국 증시 매력을 반감시키는 고정 요인인 '대북 리스크'도 박스피 장세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가 상승기에 반짝 투자 열풍을 보이다가도 어김없이 부족한 뒷심을 드러냈던 개인 투자자들도 10년 박스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2007~2019년까지 13년간 개인의 누적 순매도액은 47조원에 이른다.



개미의 변신...유동성 배경으로 증시 큰손으로


그러나 코로나19 공포가 전 세계에 휘몰아쳤던 지난해 3월부터는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코스피가 1,457.64까지 주저앉으며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삼고 주식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의 유례없는 경기 부양책과 초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도 코스피를 포함한 전 세계 증시 회복에 가속을 붙게 했다.

코로나19 위기를 자산 증식 기회로 인식한 개인 투자자들이 바닥부터 주식을 사 모으며 '동학개미운동'을 벌인 결과 코스피는 지난해에만 31%나 상승했다.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상승률이다.

꿈의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는 외국인과 기관에 밀려 번번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개인들이 강력한 응집력으로 우리 증시를 지탱해 온 땀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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