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할머니 자개장처럼…위안 주는 나만의 의자 골라볼까

입력
2021.01.06 04:30
19면

편집자주

코로나19로 집 안에 콕 갇혔나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단조롭고 답답한 집콕생활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더해보는 건 어떨까요? 격주 수요일 ‘코로나 블루’를 떨칠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소개합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매끈한 곡선, 오래된 원목에서 배어 나오는 깊은 색감에 매료된다.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가구 얘기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구의 위상이 달라졌다. 생활 편의를 목적으로 ‘가성비’가 최고의 덕목으로 꼽혔던 가구가 이제는 답답한 집콕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고, 영감을 주고, 취향을 대변하는 한 점의 예술작품으로까지 격상됐다. 강정선 공간 디자이너(엘세드지 대표)는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이 가구와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키웠다는 점에서 좋은 전환점이 됐다”며 “단순히 유행을 따르기보다 취향과 개성에 맞춰 가구를 고르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20년을 꿈꿔온 의자

어떤 이들에게 가구는 삶의 위안이다. 개인사업을 하는 최창원(40)씨는 대학 때 우연히 외국 잡지에서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의자를 20년만에 구매했다. 덴마크 디자이너 한스 베그네르(Hans Wegnerㆍ1914~2007)가 디자인한 이 의자는 천연 라탄을 촘촘하게 엮어 좌석과 등받이를 만들고, 팔걸이와 다리는 나무로 완성해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가격이 비싼데다 공간도 여의치 않아 그간 구매를 미뤄오다 최근 큰 맘 먹고 샀다는 그는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의자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커졌다”라며 “20년간 갖고 싶었던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구의 쓰임도 넓어졌다. 거대한 타원형 로터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프리츠한센의 테이블은 가족들이 가장 애용하는 가구다. 그는 “테이블에서 식사도 하지만 아들이 온라인 수업도 하고, 아내와 차도 마시고 책도 본다”며 “옛날 할머니 댁을 떠올리면 자개장이 생각나듯, 가족들과 가구를 통해 추억을 쌓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구는 취향을 대변하기도 한다. 주부 이주희(42)씨는 최근 1년여간의 수소문 끝에 원했던 소파를 집에 들였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마틴 비서(Martin Visserㆍ1922~2009)가 1960년대에 디자인한 빈티지 소파다. 천을 씌운 등받이와 좌석을 철제로 이은, 기능에 충실한 단순한 구조다. 이씨는 “예전에 크고 푹신푹신한 소파를 써보니 거실 구조를 쉽게 바꾸기도 어렵고, 공간을 많이 차지해 활용도도 떨어졌다”며 “장식 없이 단순한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고, 다양한 가구들과도 잘 어울려 볼수록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는 소파뿐 아니라 의자와 테이블, 서랍장, 조명 등 그가 공들여 구매한 가구들이 많다. 덴마크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ㆍ1912~1989)이 디자인한 의자와 스위스 모듈가구 USM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15년 전 신혼집을 꾸미면서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씨는 “마음에 드는 가구를 하나씩 사들이는 재미가 크다”며 “옷이나 가방이 외적으로 보여준다면 가구는 나의 취향을 내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행보다 취향과 공간에 맞게 골라야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디자인 가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실용성을 중심에 두고 미니멀리즘을 앞세웠던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0~60년대 활발한 디자인 실험 운동인 ‘미드센추리 모던’ 양식의 가구들도 최근 몇 년 새 유행이다. 전쟁으로 부족해진 물자와 자원을 해결하기 위해 강철, 합판, 플라스틱 등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로 가구를 만들었고, 창의적인 디자인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로 당대 만들어졌던 가구들이 요즘 들어 재발견되고 있다. 강정선 디자이너는 “전반적으로 형태나 색상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가구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유명 디자이너들의 제품뿐 아니라 국내 신진작가들의 참신한 디자인 가구에 대한 수요도 높다”고 했다.


코로나로 집안 가구의 중요성이 커졌어도 가구를 한번에 바꾸기란 어렵다. 전문가들은 유행보다 자신의 취향을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간에 맞게 가구를 배치하는 것도 기본이다. 가구 편집숍 ‘이노메싸’ 관계자는 “가구는 집에 두고 오래 쓰는 물품이다 보니 유행을 따르기보다 어떤 스타일의 가구를 좋아하는지 본인의 취향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며 “원목을 좋아하는지, 철제나 가벼운 소재를 선호하는지, 장식이 많은 게 좋은지 절제된 디자인이 좋은지 등을 우선 따져보고 가구를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하나의 용도보다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가구들을 선호하고, 패브릭 소재의 소파 등 따뜻한 느낌을 주는 가구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강정선 디자이너도 “다양한 가구를 전시하는 공간에서 충분한 경험을 해본 뒤에 구매하는 게 좋다”라며 “기존에 사각 형태의 가구가 많다면 곡선이나 형태가 다른 가구를 고르거나, 색상 등에도 변화를 주면 집콕 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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