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등판하자 모더나가 바뀌었다"...백신 '깜짝' 확보 스토리

입력
2020.12.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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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V·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지칭하는 약어)'가 등판하자 분위기가 바뀌긴 했다. 모더나 측이 상당히 전향적으로 변했다."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000만명분(4,000만 도즈)을 한국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29일 '깜짝' 발표하자, 정부 고위 관계자가 귀띔한 말이다. 물론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모더나와 지난 8월 말부터 협상을 진행해온 성과가 연말에서야 나타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전 세계가 백신 확보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모더나가 기존 1,000만명분(2,000만 도즈)이었던 계약 물량을 2배 늘려 주겠다고 한 것이나, 하반기로 예상됐던 공급 시작 시점을 2분기로 앞당겨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을 주도적으로 챙긴 시점과 맞물려있다는 게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아직 계약이 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백신 도입 및 접종 지연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상당한 상황에서 들려온 '반가운 소식'을 청와대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미리 알렸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가 28일 밤 9시 53분부터 10시 20분까지 화상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외국 정상이 아닌 글로벌 기업 대표와 통화한 건 빌 게이츠 빌&멜린다게이츠재단 회장 외에는 없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백신 걱정 해소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는 뜻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백신 무능' 지적이 커지는 상황에서 백신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통화에서 반셀 CEO는 "한국 정부가 빠른 계약 체결을 원하면 연내에도 계약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 국민에게 희망이 되는 소식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가급적 연내에 계약을 체결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내 계약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통화를 통해 계약 시점이 앞당겨졌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이달 중순 발표한 모더나 계약 체결 예상 시점은 내년 1월이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구매 물량이 2배 늘어나며 가격은 인하될 예정이다. 다만 인하 폭이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이번 계약이 체결되면 총 5,600만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 대변인은 설명했다. 전날 보건 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 1,000만명분, 얀센과 600만명분, 화이자와 1,000만명분 공급 계약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백신 공동구매와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를 통해서도 1,000만명분을 확보한 상태다. 강 대변인은 "노바백스, 화이자 등과의 추가 협상이 끝나면 백신 확보 물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반셀 CEO는 '모더나 백신을 한국 기업이 위탁생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자'고도 합의했다. 반셀 CEO는 "한국 정부가 바이오 신약 개발을 중시하고 있고 한국 기업이 강력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잘 안다. 위탁 생산을 하면 대규모 생산 능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위탁 생산 확대와 추가 물량을 맞바꿨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모더나 생산을 국내 기업이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