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 조냐 케냐타 공항. 비행기가 멈춰 서자 승객을 내려 준 곳은 공항 건물로 이어진 복도가 아니라 활주로였다. 6월의 녹음과 함께 덥혀진 활주로의 아스팔트를 따라 임시 건물로 들어서 입국 수속을 밟는데, 창밖을 보니 택시 기사들이 호객 행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를 나누는 기준을 호객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눈다.
잠시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케냐 심(SIM) 카드를 사서 폰에 집어 넣었다. 택시 탈 돈은 없으니 공항 직원에게 시내까지 갈 방법을 물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시내까진 아니지만 중간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단다. 버스를 타고 보니 30년은 돼 보였다.
부실하게 깔린 아스팔트를 따라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버스는 시도 때도 없이 멈춰 서 사람을 태우고 내려줬다. 빨간 흙 위에 천을 깔아놓고 옷가지와 신발을 파는 사람들이 어지럽게 모여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나이로비구나.
나이로비는 ‘아프리카의 유럽’이라 불릴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정돈된 느낌은 없었지만 활기차 보였다. 대학의 댄스동아리 회원들은 거리 공연을 하고 있고, 총알이 있을까 의심되는 총을 든 군복 입은 이들도 보였다. 이 도시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2014년 3월 20일 ‘일부다처제 법’이 케냐 의회를 통과했다. 여성 의원들이 반발하며 퇴장한 가운데 진행된 표결이었다. 케냐의 여성 단체와 인권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결국 4월 29일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의 서명으로 생명을 얻게 됐다.
21세기에 일부다처제 법이라니. 나는 하루에 1,000케냐실링(약 1만원)하는 무늬만 호텔에서 머물다 객실을 청소하는 직원으로부터 이 내용을 듣게 됐다. 그리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납득하기가 어려웠기에 이 문제를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법안의 이름이 알려진 일부다처제 법이 아닌 혼인법(Marriage Act)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케냐의 혼인법은 원래 있었지만, 문제는 혼인법 말고도 기독교 혼인 및 이혼법, 이슬람 혼인법, 힌두교 혼인 및 이혼법 등 7개의 법안이 섞여 있었다.
여러 종교와 관습법에 따라 제각각 살아온 케냐의 전통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법 모두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졌다. 1967년 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케냐타는 결혼법 위원회까지 만들어 여러 결혼 법안을 하나로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좌절됐다.
기존 혼인법들은 통합 관리가 어려웠다. 특히 다른 법에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 결혼하거나 이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분쟁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무려 47년 만에 빛을 보게 된 2014 개정 혼인법은 기존의 혼인과 이혼을 다룬 개별 법률 7개를 없애고 하나로 통합했다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여성계와 시민 단체들은 해당 법안이 케냐 헌법의 평등 원칙과 여성의 존엄을 훼손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확히 어떤 조항 때문일까.
케냐의 헌법 사이트에서 혼인법을 찾아보았다. 총 14장 98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마지막 조항인 98조 아래엔 폐지된 7개의 법안 목록이 있다.
1장에서는 법률이 다루는 내용 중 단어들의 혼동을 줄이기 위해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는 장이다. 아동, 지참금, 신앙 등을 포함해 총 15개의 단어를 설명하는데, 일부다처제란 말은 11번째에 등장한다.
총칙인 2장에서는 결혼의 정의와 법률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요건 등을 다룬다. 아마도 문제가 됐던 조항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결혼의 종류를 밝힌 6조에서 1항은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 관습, 통상적인 결혼을 통해 축하를 받으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2항은 기독교인과 힌두교 또는 시민 결혼은 일부일처제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문제의 3항이다. 3항에선 관습법이나 이슬람법에 따라 축하를 받은 결혼은 일부다처제 또는 일부다처제로 간주된다고 적시돼있다. 물론 이는 이슬람 신앙을 고백하고 인정받은 자로 한정되고, 다음 조항인 8조에서는 각 배우자가 자발적으로 개종 의사를 표명하면 일부일처제로 전환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기는 규정도 있다. 케냐의 전통 사회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중혼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과 쿠란 내용을 종교적으로 동의하는 흐름이 남아 있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를 나눈 숙소 직원은 “실제로 재밌는 사례가 하나 있다”며 2002년에 취임한 음와이 키바키(MWAI KIBAKI) 케냐 3대 대통령 이야길 들려 주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아무도 몰랐던 둘째 부인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존재가 대통령 당선 이후 알려졌고, 당시까지 마땅한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영부인들의 의전과 예우를 놓고 설왕설래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통령은 다처제를 허용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였다. 이를 두고 전통 사회의 가치와 관습이 만들어진 과정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다처제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있다.
다처제와 관련해서 쿠란에 관련 내용이 들어가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7~8세기 부족 간 전쟁이 일상이었던 시절 마땅한 복지 제도가 없다보니 남편이 전사하면, 살아남은 남자들이 유족의 생계를 책임지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남편이 모든 부인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다면 4명까지 가능하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이러한 결혼 문화는 여성이 남성의 재산에 기대어 살기 위한 생존 방법이라는 것이다.
몇몇 케냐인들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이들은 입을 모아 “일부다처제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여러 명의 아내에게 같은 정도의 관심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재력이 없으면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했다. 도시에 사는 국민들이나 젊은 세대에게 이 같은 혼인은 극소수 사람들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반면 아직도 부족 사회를 살아가는 경우엔 가난한 집에서 부잣집에 딸을 넘기고 지참금을 받는 경우가 많아 시골의 경우엔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혼인법 43조 2항에는 지참금을 주고받은 경우 이것이 혼인을 입증할 수단임을 드러내고 있다.
지참금은 결혼을 약속하고 주고 받는 주식, 물건, 돈 또는 기타 재산을 가리킨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는 지참금이 결혼을 허락한 신부의 집안에 감사의 표시와 신부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보편적으로 소와 염소 등을 주지만, 최근엔 결혼식장에서 소 울음 소리를 스피커로 틀어놓고 돈으로 주는 경우도 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케냐의 지참금이 한국에서 결혼할 때 주고 받는 예물이나 혼수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을 관습이 아니라 법에 분명히 밝혀뒀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감사와 사랑의 표시가 아닌, 여성을 두고 어떤 거래가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이런 결혼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처음부터 동등하지 않은 생활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14년 케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배우자의 신체 폭력을 경험한 기혼 여성은 57%, 배우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55%였다.
여기에 더해 여성 인권 유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할례를 경험한 15~64세 여성이 통계로 드러나는 수치만 21%에 달한다. 1990년부터 법으로 금지했지만, 여성이라면 통과해야 하는 성인식으로 여기는 건 변함이 없다. 일부 도시에서는 병원에서 의사들에 의해 행해지기도 하지만 이 비율은 15%에 그친다.
나이로비에서 서북쪽으로 90km 떨어진 나이바샤에 있는 작은 어린이센터에는 10~17세 아이들 1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여자 아이들은 주로 할례를 당한 언니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봤거나, 언니들이 도망가라는 조언을 주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례 이후엔 학교를 그만두고, 혼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혼 역시 문제가 되는데, 부모가 결정하고 별다른 저항 수단이 없다.
대다수 지역에서는 마취와 소독을 하지 않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전통 방식으로 이뤄진다. 할례를 당하는 여성 중 80% 이상의 여성이 이와 같은 환경에 노출된다. 이런 경우 합병증 유발이 높은데, 실제로 합병증을 겪으면 이는 곧 불결하다는 인식을 준다.
때문에 결혼을 했으면 결국 남편이 떠나기도 하고, 결혼하지 않았다 해도 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어 사실상 학대를 당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몸은 아픈 채로 곧바로 생계를 위협받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특히 대다수 여성이 어린 나이에 할례를 경험하게 된다. 할례를 당한 27%가 5~9세 사이의 아동이며, 43%는 10~14세의 어린이였다. 일부 어린이들은 두려운 나머지 부모님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고 집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 지역이 나망가(Namanga)에서 살고 있는 30대 마사이 부족의 여성은 “할례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할례는 특정 부족과 특정 종교 집단에서는 여성 스스로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사회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못하다 보니 과거로부터 잘못된 문화와 인식이 전해 내려온 뒤 개선되지 못하고 도리어 뿌리 깊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더 빠른 시일에 쉽게 개선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후루케냐타 대통령은 2023년까지 모든 할례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구촌은 빠르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곳들이 존재한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를 이끌어가는 대표 도시이자, 주변 국가 청년들이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연 평균 5% 전후의 경제성장률 속에서 많은 기회들이 생기지만, 어쩌면 그것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도시를 빠져 나오면 곧바로 온통 흙길이 널려 있고, 농업 관련 인프라와 기술이 부족해 농작물 재배는 여전히 전통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닭의 경우 80%가 폐사하는 등 농업 연구나 지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농업 용수는 물론 상하수도가 갖추어진 곳도 많지 않아, 어릴 때부터 물을 길러 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과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의 일생은 일하고, 출산하고의 반복이다. 여성이 교육받는 비율이 남성보다 낮고, 남편에게 폭력과 성폭행을 당하는 비율도 높다.
평균 수명이 60대를 넘지 못하는데, 그나마도 이곳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짧은 특이한 나라다. 케냐의 출산율은 1960년대 8명대를 유지하다가 70년대 이후부터 낮아지는 추세다. 2008년 4.59, 2013년 4.0, 2018년 3.49까지 떨어졌다.
케냐 헌법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기회 보장과 이른바 성별 할당제의 조항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같은 선상에서 인권과 평등,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헌법에 잘 정리했음에도 혼인법에서의 관습법과 이슬람법을 따르는 조항들이 헌법의 정신과 충돌하는 지점들은 법률적으로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는 법률을 실천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지구촌 도시들은 성별 격차 또는 차별의 지점들을 끊임없이 토론해가며 좋아지는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농촌 인구가 80% 가까운 케냐에서는 도시화 속도, 교육의 개선, 실질적 인권의 보장 등이 법률과 전통 문화의 괴리로 쉽사리 나아진다는 전망을 하기 어려워 보였다.
세계 보건기구 조사에 따르면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동 등 28개의 나라에서 하루에 약 6,000여명, 연간 200만여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할례로 고통 받고 있다.
오늘도 열살 즈음된 아이들은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무작정 집을 떠날 각오를 다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