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시장은 지금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방향 전환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동안 기승을 부렸던 투기가 잦아들고 집값 거품이 걷히면서 가격 안정화가 진행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착륙이 발생하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큰 충격이 닥칠 수도 있다. 반면,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면 문재인 정부의 ‘투기와의 전쟁’은 참담한 패배로 끝나면서 집값 안정의 고삐는 또다시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지금부터 1년, 내년이 관건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정부의 각종 수요 억제책과 규제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고, 추가적인 주택 공급책이 보강돼 수급 우려까지 해소된다면 집값은 조정기를 맞을 수 있다. 반대로 수급 우려가 해소되지 못하는 가운데 여기저기 투기세력의 준동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악화한다. ‘풍선효과’로 지방까지 번졌던 주택가격 상승세는 다시 서울과 수도권으로 환원되며 상당 기간 집값 상승세가 더 이어질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 장관 교체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극과 극이다. 내년에도 집값이 오른다는 전망과 반대로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팽팽하다. 이광수 미래에셋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018년부터 집값 조정세를 예상한 대표적 부동산시장 분석가다. 물론 지난 2년간 집값 조정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위원은 또다시 내년도 집값 조정세를 예상하고 있다. 그는 “거시경제 여건에 따라 자칫하면 집값이 폭락할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부동산시장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곳곳에서 집값 신고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있는가 하면, 거래 위축 속에서 조세 회피형 매물이 나올 때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풍선효과’가 전국화하면서 정부가 창원을 포함해 전국 37개 지역을 새로 규제 및 조정지역으로 지정했다. 현 부동산시장의 전반적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부동산시장 상황 진단에 앞서 시장의 질적 변화를 먼저 분명하게 짚고 싶다. 나는 요즘 ‘시장의 투자화’ 또는 ‘시장의 투기화’라는 말을 쓴다. 증시처럼 시세차익을 겨냥한 단기 투자, 또는 투기가 매우 보편화했다는 얘기다. 물론 1970년대 강남개발 때부터 부동산 투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땅 투기였고, 그것도 소수 투기세력의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 대중은 거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누구나 부동산정보를 접할 수 있고, 컨센서스가 형성되는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다양한 세력이 유기적인 투자 행위에 나서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 경주나 창원 지역 집값이 오르는 건 인구가 많아졌거나 소득이 증가해서가 결코 아니다. 규제지역이 아니니 투자 수요가 그쪽으로 갑자기 몰린 거다. 시장이 투기화하면 가격 변동성도 커진다. 국내 부동산시장은 2019년부터 가격 변동성이 굉장히 커졌다. 가령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가격 변동 추세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우상향 그래프가 나타난다. 실수요에 따라 원활하게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2019년을 기점으로 돌연 가격이 급등락하면서 진폭이 크게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투자, 또는 투기적 동기의 매매가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부동산시장의 급변동을 주도하는 투자, 또는 투기세력의 존재를 감안할 때, 지금 부동산시장의 판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아직은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세력의 움직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본다. 지방 비규제지역으로 ‘풍선효과’가 이어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창원의 한 개 아파트단지가 500~1,000가구다. 울산 같은 곳은 더 적다. 그런 곳에 외지인들 임장(부동산 매물 현장답사) 버스 서너 대 오락가락하고 소문 돌면, 곧바로 매물 사라지면서 가격 올라간다. 그런 분위기가 아직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격 상승률 둔화 추세로 볼 때, 투기매수세는 지난 9월부터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대출규제, 세금규제가 강력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중에서도 나는 지난 ‘7ㆍ10 대책’에서 취득세를 강화한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본다. 다주택자, 법인 등에 대한 취득세율이 2주택 8%, 3주택 이상과 법인은 12%로 인상됐다. 양도ㆍ증여세는 시세차익 발생 후에 내는 세금이다. 반면 취득세는 먼저 내는 ‘입장료’다. 종부세 등과 함께 취득세를 올리면서 투기적 매수세가 위축됐다. 따라서 지금 부동산시장은 투기에 따른 거품의 정점에 근접한 것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고 있다.”
-내년 집값 전망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국민 70%가 내년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다수 전문가들도 오를 것으로 본다. 반면, 이 위원을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하락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내년 집값 추세를 전망한다면.
“말씀드린 대로 요즘 시장에서 집값을 움직이는 핵심동력은 투자 목적의 매수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매수세가 이미 9월부터 뚜렷이 약화했고, 종부세 등 보유세나 취득ㆍ양도세 강화 등 규제효과 등을 감안하면 내년에도 투자 매수세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반면 매물은 늘어날 것이다. 다주택자 세금 강화 및 규제 압력으로 적어도 양도세 중과 유예 기한인 내년 6월 전에는 매물들이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실질 수요가 줄고, 팔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은 어떻게 되겠나. 나는 이르면 1분기, 적어도 상반기엔 조정의 변곡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내년 신규분양 물량 등 공급량이 줄어 수급 불안에 따른 가격 상승 압력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은데.
“내년 집값 상승 전망하는 전문가들이나 언론이 내세우는 주요 근거 중 하나가 공급이 감소한다는 거다. 그런데 사실 공급량과 부동산시장에서의 매물량, 또는 가격 등락과는 상관성이 크지 않다. 과거 참여정부 때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의 집값이 급등했다. 그때 서울의 입주물량이 7만 가구대였다. 엄청나게 많이 입주가 돼도 가격이 오르지 않았나. 2015년도 분양 물량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집값은 올랐다. 반대로 2012~2013년엔 서울 입주 물량이 2만 가구였다. 내년과 비슷한 물량이다. 그런데 그 때 강남 집값 많이 빠졌다. 집값 움직이는 공급은 집의 총량과 분양물량이 아니다. 시장에 내놓는 매물의 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막연한 직관으로 이해한다. 아파트 공급이 그렇게 부족해? 그러면 집값 오르는 게 당연하지? 천만에, 절대 아니라는 거다.”
-2018년부터 집값 하락세를 예상하셨다. 정부의 계속된 수요 억제책이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상황은 예측과 다소 엇나간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주택시장 상황이 예상과 달리 돌아간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두 가지인데 첫 번째로 당시 나는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서울 강남 3구를 주요 시장으로 보고 전망했다. 강남 3구 중에서도 4,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로서 거래가 활발한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가격 추세를 보자. 2018년 9월에 18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그게 쭉 빠졌다가 올해 4월 17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이례적 상황 때문에 8월엔 22억2,000만원까지 갔지만, 추세적으로 봐서 2018년 9월 이후 그래프를 보면 내 전망대로 하락했다가 2019년부터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양상을 맞았다. 서울 강남 3구의 구체적 거래가격으로 보면 2018년 이후 하락세가 나타났던 건 맞다. 다만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서울 강남 3구 외 다른 지역의 낮은 가격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제 예상 밖의 현상이 나타났다. 10억원 아파트가 11억원이 되면 10%가 오른 거다. 반면 20억원 아파트가 19억원 되면 5% 내린 거다. 등락률 합산하면 5% 오른 게 된다. 그런 통계적 착시현상도 있었다.
또 하나는 올해 코로나19라는 결정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코로나19가 부동산시장 앙등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리가 낮아지고 팬데믹이 닥치면 사람들은 그 동안 오른 자산을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그쪽으로 회귀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부각된 셈이다. 그런데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집값은 단기전망이 중요하지 않다. 5년, 7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유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산이니 큰 방향성 차원에서는 앞으로 더 주의해서 봐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는 이렇게 매물의 변화, 투자 목적의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건 유의 깊게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내년에 집값 거품이 걷히고 조정세를 예상하신다면 그 예상의 근거를 말씀해 달라.
“첫째, 투자 매수세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아파트 매수자 중 40%가 투자 목적이다. 그런데 이 40%가 줄어들고 있다. 이 40%가 1년간 전국에서 집을 산 물량이 10만 채다. 그게 줄어든다는 얘기다. 반면 내년부턴 팔려는 사람이 많아진다. 보유세와 양도세 강화뿐만 아니라, 집값이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에 수익률 하락을 예상하며 매물을 내놓게 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 이제 임대사업자 등록제가 아예 없어져서 말소되는 게 나온다. 그게 올해 40만 가구, 내년 50만 가구로 점점 증가한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3기 신도시 선분양 물량 6만채도 나온다. 다주택자들로서는 버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임명 여부는 아직 유동적이지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세 가지 재개발, 재건축을 얘기했다. 저층 거주지, 준공업지역, 역세권 등이다. 세 지역 재개발 등을 통해 도심공급 물량을 충분히 늘리고, 기존의 1가구 1주택 규제정책은 유지하고 보강하겠다는 구상이다. 아마 그게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정책 퍼즐이 될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고 기대하나.
“1가구 1주택 기준의 규제 정책이 유지되고, 신규 공급책이 가동된다면 당장 내년은 아니라도 정책효과를 볼 수 있다고 기대한다. 다만 변 후보자 구상은 문제가 많다. 일례로 역세권 고밀도 개발한다는데, 정부 땅이 아니지 않나. 땅 소유주와 합의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가. 공공개발하고 이익 환수한다 해도, 인센티브 협상해야 하는데, 그게 쉬웠으면 다른 장관들도 벌써 했다. 시장에서는 냉소적 반응이 많다. 나는 공급을 하려면 ‘파괴적 공급’을 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예상치 못한 공급책이 효과를 낸다. 이번에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이 올림픽대로 위에 지대를 만들어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 그런 게 파괴적 공급이다. 또 용산공원에 중산층을 위한 좋은 주택 분양한다고 하면 지금 30, 40대가 김포 가서 아파트 사겠나. 안 살 거다. 용산공원으로 센트럴파크 만든다지만, 미국의 1800년대 도시공원 계획을 21세기에 따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저는 그린벨트 푸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년에 집값이 조정세를 탄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큰 실패는 아닌 걸로 매듭이 지어질 수 있겠나.
“집값 폭등을 만회할 정도로 당장 조정은 나타나지 못할 거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실패를 수습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유야 어쨌든 집권 초기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주면서 다주택 고속도로 깔아 놓은 건 치명적인 실책이다.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을 분리해 접근하다 보니 그런 실책이 빚어진 건데, 이름을 굳이 거론하긴 싫지만 당시 청와대에서 정책을 강행했던 사람은 책임이 크다. 현 정부는 실패를 수습하기에도 바쁠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