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문제를 두고 때를 놓쳤다는 실기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한탄해봐야 지나간 일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으로선 '최소 백신으로 최대 효과를 낼수 있는 묘수를 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묘수는 접종 순서와 기간이다. 감염취약계층부터 먼저 맞히되 접종 완료까지 시간을 최대한 압축해야 사망자 감소와 집단면역 형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23일 백신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코로나19 백신의 최우선 접종 대상은 고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감염되면 위중증으로 진행되고 사망할 확률이 가장 큰 집단이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등 지금까지 거론되는 코로나19 백신들은 임상시험에서 감염자들이 위중증환자로 발전하는 걸 어느 정도 막아주는 효과를 나타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코로나19 백신들은 무증상 감염을 막아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것보다는, 사망이나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을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춰 개발되어온 백신들"이라 말했다.
다만 고령자 가운데서도 요양시설이나 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는 사람,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 중 어느 쪽을 먼저 접종할 건지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입원 중인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는 건강 상태나 나이 등에 따라 이상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갖춰 놓아야 한다.
원래 감염병 유행을 끝내는 데 필요한 집단면역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선 젊은이들부터 먼저 맞히는 게 낫다. 이동량이 많은데다 아무래도 고령자들보다는 접종 후 항체도 더 잘 생긴다. 감염 전파 고리를 끊어 단기간에 감염자 수를 뚝 떨어트리는데는 더 유리하다는 얘기다. 실제 과거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때는 우선접종 대상으로 학생들이 지목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중증 환자와 사망자 숫자부터 확실히 줄이지 않으면 의료 시스템 과부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거기다 코로나19 백신들은 임상시험 대부분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렇다면 고령자에게 먼저 맞히되 전체 접종 기간을 대폭 압축해야 한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접종 기간이 길어져서 뒤에 맞는 사람이 너무 늦게 접종할 경우, 앞선 접종자들의 면역력이 떨어져 집단면역 형성은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면역력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초과 물량을 확보해둬서 접종 뒤 백신이 남을 수 있는 국가로부터 백신을 꾸어오자는 주장도 내놓는다. 정부가 미국 기업 모더나, 노바백스와 벌이고 있다는 추가 물량 확보 협상을 기다려보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홍기종 대한백신학회 편집위원장(건국대 교수)은 "백신 접종을 이미 시작한 나라들은 접종 뒤 집단면역이 형성됐는지 확인한 뒤에야 남는 백신량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집단면역이 형성되기까지는 짧게는 반년, 길게는 9~10개월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다. 빨라봐야 내년 하반기다. 백신 추가 확보 협상 또한 성공했다 해도 이미 줄 선 나라가 많아 빨라야 내년 6월 이후다.
촘촘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은 거기서 나온다. 정부 발표대로 4,400만명분(국민의 약 88%)의 백신이 내년에 도입된다해도, 양 자체가 충분치 않은데다 그마저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들어온다. 결국 전 국민이 한꺼번에 맞지 못한다면, 백신의 특성을 감안해 접종 순서, 기간을 면밀하게 설계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