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갇힌 바다, 배 대신 차로 간다…신안 천사섬 드라이브

입력
2020.12.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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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 다리로 연결된 섬들의 고향


신안을 천사(1004) 섬이라 일컫는 건 과장이 아니라 축소된 표현이다. 무인도와 유인도를 합하면 신안의 섬은 모두 1,025개에 달한다. 입에 착 감기고 사랑스러운 수식을 찾다 보니 1,004개로 줄었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7.26㎞)를 건널 때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나라로 들어가는 것처럼 경이롭다. 바다에 갇힌 섬이 아니라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암태도에 닿으면 위로는 자은도, 아래로는 팔금도, 안좌도가 다리로 연결된다. 배가 아니라 차로 신안의 주요 섬 드라이브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여행하기 어려운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 가 볼 곳으로 저장하면 좋겠다.

천사대교를 건너 첫 로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도선착장이다. 천사대교의 위용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네 번째로 긴 해상교량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도 놀랍지만, 교각과 교각 사이 일부 구간이 아래로 살짝 처진 모양이 특이하다. 제한 속도 시속 60㎞, 비교적 저속으로 달리면 대낮에도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천사대교에서 직진해 기동삼거리에 이르면 정면으로 ‘동백꽃 파마’ 담장 그림과 마주한다. 봉긋하게 자란 동백나무 두 그루가 담장 위로 솟아 문병일 할아버지와 손석심 할머니 부부의 사랑스러운 파마머리가 되도록 그린 작품, ‘천사의 보금자리’다. 풍성한 할머니 파마에 비해 할아버지 모발은 다소 듬성듬성하다. 애초 동백나무가 한 그루여서 할머니만 그렸는데, 할아버지의 요청으로 한 그루를 더 심고 부부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후문이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자은도로 이어진다. 자은도는 산도 높고(최고봉은 두봉산 364m) 들도 넓어 해안이 아니면 섬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섬 중앙의 농지에는 한겨울인 지금도 대파 밭이 검푸른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해수욕장은 주로 섬 서북쪽에 형성돼 있다.



섬의 북쪽 끝자락 둔장해변에는 지난해 ‘무한의 다리’가 놓여졌다. 해변에서 바로 앞 무인도인 구리도, 고도, 할미도를 잇는 해상 보행교로 길이는 신안을 상징하는 1,004m다. 한국인 조각가 박은선과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보타의 작품으로, 무한대(∞)를 내포하는 다리 이름도 두 작가가 직접 붙였다. 다리 난간을 반원으로 마감해 실제 끝없는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근 둔장마을에는 최근 옛 마을회관을 개조한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첫 작품으로 둔장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입힌 캐리커처와 자은도의 상징인 대파 밭 그림이 걸려 있다.



양산해변으로 이동하면 ‘1004 뮤지엄파크’가 있다. 신안군이 공을 들인 곳인데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외 공간은 다소 황량하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1004섬 수석미술관’, 7,700여점의 조개 및 고둥 표본을 전시한 ‘세계조개박물관’은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팔금도로 이동해 서쪽 끝까지 차를 몰면 바다로 돌출된 언덕에 조그맣고 하얀 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1969년 처음 불을 밝힌 서근등대다. 등대 모양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경치가 빼어난 곳도 아니지만 인적 드문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쓸쓸함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곳이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섬과 섬 사이에 갇힌 바다 위에 양식장 시설물만 줄지어 세워져 있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날 혼자 가기 딱 좋은 곳이다.



가장 아래쪽 안좌도의 ‘퍼플교’는 최근 가장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곳이다. 섬 남쪽 두리마을과 바로 앞 박지도와 반월도를 연결하는 3개의 해상 인도교로 바다 위를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4개 섬 드라이브를 마치면 다시 압해도를 경유해 육지로 나온다. 천사대교 우측 송공산 자락의 ‘천사섬 분재공원’은 한겨울에도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름이 분재공원이지 딱히 분재가 주인공이라 하기 어렵다. 지금은 5,000여그루에 달하는 애기동백 군락이 단연 돋보인다. 12월부터 1월 말까지 진분홍 꽃잎이 떨어지고 피기를 반복한다. 입구에서부터 산중턱까지 지그재그로 오솔길을 조성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원을 조성하며 심었기 때문에 자생 동백숲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맛은 떨어진다. 공원 중앙에는 중부지방에서 봄꽃으로 내다 심는 다양한 색상의 팬지 꽃밭을 조성해 잠시나마 계절을 잊게 한다.



신안=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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