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늘어난 여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입력
2020.12.15 01:00

20세기 사상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저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 여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당시 사회적 통념을 뒤집은 주장이었다.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인류의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여가시간이 늘어난 만큼 인간의 자유·주체성이 함께 증가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한 취업전문업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남녀 10명 중 약 7명이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여가시간이 늘었다고 답했다. 연령대별 편차는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여파로 비자발적인 여가시간이 늘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늘어난 여가시간을 슬기롭게 즐기고 있느냐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여가시간을 보내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지인들과 만남(51.5%)'이었고 'TV나 영화시청(29.9%)'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는 'TV나 영화시청'이 전체 응답률의 70.1%를 차지했다. 물론 TV나 영화시청도 여가를 보내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다시 이전과 같은 일상이 돌아왔을 때 혹여 후회가 밀려오지 않을까. 예를 들면 '내 인생을 즐겁게 해 줄 취미를 하나 배웠더라면'하는 후회 말이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은 노년 생활을 미리 준비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여러 기업에 노후준비 교육을 하러 다니다 보면 의외로 많은 분이 은퇴 후 어떤 일로 시간을 보낼지 고민한다.

이런 분을 만나면 먼저 '요즘 시간 있을 때 뭘 하세요?'라고 묻는다. 두 번째 질문은 '앞으로 뭘 해보고 싶은가요?'다. 대부분 사람이 선뜻 대답을 못한다. 무언가 의미 있는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여가시간에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인지 모르겠다. 대답을 주저한다 싶으면 먼저 '저는 그냥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들고 산책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다양한 답이 돌아온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당구 치던 기억에 요새 시간 나면 삼삼오오 당구 치러 다닙니다', '유자를 선물로 받은 게 있어 유자청을 만들었는데 하루 꼬박 걸렸어요. 다른 과일로도 만들어보고 싶네요' 등등.

여가란 그런 것이다. 특정한 활동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반드시 꾸준하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놀이가 아니어도 된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면 그만이다. 유자청을 만들었다던 수강생은 아파트 주민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이웃에게 나눠주었고, 새롭게 만들어 볼 사과청은 이웃들에게 재료비만 받고 팔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요즘 시간 있을 때 뭘 하세요?', '앞으로 뭘 해보고 싶으신가요?'


김민경 국민연금공단 노후준비 전문강사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