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닥쳐 3법’이다.”
지난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국가정보원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일곱 번째 주자로 나선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국정원법ㆍ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과 5ㆍ18 역사왜곡처벌법을 이렇게 불렀다. 해당 법안들이 “국가가 개인에게 닥치라고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닥쳐’만 30여차례 언급했다.
그는 11일 오후 3시 24분 본회의장 연단에 올라 12일 오전 4시 12분까지 총 12시간 47분 동안 반대 토론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은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토론 당시 이종걸 민주당 전 의원이 세운 12시간 31분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7월 대정부질문 당시에도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주제의 5분 발언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바 있다.
윤 의원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앞서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버스터에서) 전 국민 사찰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한 것에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찰에 관한 대상과 범위가 모호하고 국민의 개인정보를 캐는 것을 합법화시키는 법률 조항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없애는 대신 ‘경제질서 교란’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기능이 신설됐다. 국가기관장이 국정원의 정보제공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도 포함됐다. 윤 의원의 주장은 국정원이 이 같은 조항을 근거로 기업인 등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 민주당은 ‘해당 조항은 산업계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신설된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접경 지역에서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등을 금지하는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국민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민주당 소속)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은 탈북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했다. 전단을 뿌리는 것은 안 되고, 광화문 광장에서 소리치는 건 된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윤 의원은 5ㆍ18 역사왜곡처벌법도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인ㆍ비방ㆍ왜곡ㆍ날조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는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법은 그냥 입을 다물라는 법이다. 역사에 대해 그것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처벌하는 것은 우리 현대 민주주의에서 생각하기 어렵다”고 했다.
윤 의원은 “정부가 고르는 사건에 대해서 닥치라고 국민 개인의 기본권을 마음껏 침해한다. 더구나 그런 법이 국회에서 숙고하지 않고 상임위에서 망치를 두드렸다”며 “오만함이 낳는 결과는 형편 없는 입법과 정책”이라고 했다. 이들 3법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야당 반대에도 민주당 주도로 단독 처리된 바 있다.
윤 의원은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책 ‘미국의 민주주의’를 인용하며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다수가 굉장한 전제정을 휘두르게 된다. 다수가 법률을 만드는 특권을 가지면서 자기들은 법률을 무시하는 권리까지 요구하면 이건 이상한 체제가 돼버린다. 이게 족집게죠”라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윤 의원에 찬사를 보냈다. 박수영 의원은 “ ‘철의 여인’ 정말 수고 많았다”며 “12시간을 넘는 길이도 길이지만 내용의 깊이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까지 정말 세계 최고였다”고 했다. 김병욱 의원은 “윤 의원이 단순히 시간만 끈 게 아니라 문재인 정권이 무너뜨린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우리 민주주의가 나아갈 바를 국민 앞에 당당히 밝혔다”고 했다. 최형두 의원도 “필리버스터 수준을 바꿔놨다”며 “단락마다 편집해서 특강 교재로 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편 윤 의원의 연설을 끝으로 필리버스터는 ‘일시’ 중단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3시 15분께 윤 의원의 연설을 일시 중단시킨 뒤 “어제 필리버스터를 한 국회의원 중 한 분이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보고가 있다”고 했다. 이어 4시 12분께 윤 의원이 연설을 마치자,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본회의를 정회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