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에 드리워진 왕실의 위용

입력
2020.12.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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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국내 전시 중인 '금박해학반도도'


의대생이 병원에서 실습하듯 문화재 전공자들은 박물관에서 실습을 한다. 대학원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미나 수업을 들었던 학기가 있었다. 당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던 유물 한 점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조사한 유물이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에서 온 '금박해학반도도(金箔海鶴蟠桃圖)'였다. 이 작품은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국내에 들어왔다.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지원 사업

문화재는 아무리 학술적 의미와 미적 가치가 높아도 ‘전시가 될 만한 상태’가 아닌 이상 세상에 공개되기가 어렵다. 오랜 기간 훼손이 일어난 유물은 전시 과정에서 더 큰 손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시를 통해 문화재의 존재와 의미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보존처리가 꼭 필요하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5년부터 해외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보존처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현황을 파악한 후 기본적인 학술 조사를 통해 이를 세상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울러 수리가 필요한 작품을 선별해 국내에서 보존처리를 받을 수 있게 지원했다. 2013년부터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이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금박해학반도도'

‘해학반도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번 먹으면 삼천 년을 산다는 천도(天桃)와 학을 그린 그림이다.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금박해학반도도는 수백 개의 금박을 부착해 꾸민 선경(仙境)의 배경에 그 위를 나는 군학(群鶴)이 그려져 있다. 금박 하늘 위에 그려진 연보라와 옥색 채운(彩雲)은 보는 이를 압도하며 찬란한 위용을 뽐낸다. 병풍 오른쪽 1폭에는 암석에서 복숭아나무가 뻗어 나와 ‘ㄱ’자 구도를 만들었다. 그 아래로는 일곱 마리의 학이 노닐고 있다. 화면 중앙의 괴석(怪石) 위에는 한 마리 학이 내려앉아 무게 중심을 이루었다. 화면 왼편에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두 마리의 학이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 보통 8폭이나 10폭으로 꾸며지는 전통 방식과 달리 이 작품은 12폭을 연결해 높이 234㎝, 너비 714㎝에 육박하는 대형으로 만들어졌다.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을 위해 조성된 그림

당초 이 작품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국적 논란이 있었다. 병풍에 금박을 부착한 예가 일본에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의 예로는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십장생 화제가 정립되지 않았으며 병풍을 12폭으로 꾸미지도 않았다. 다행히 보존처리 과정에서 암석에 쓴 ‘여러 신선들이 장수를 기원하며 임인년 여름에 만들다[羣僊拱壽壬寅夏日製]’라는 글귀가 발견되었다. 이 글귀는 조선의 형식을 보일 뿐 아니라 작품의 제작연대를 알려주었다.

전문가들은 괴량감이 강조된 암석을 통해 이 작품이 18세기 이후 제작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었다. 아울러 금박 성분이 모두 순금임이 알려지자 이것이 왕실에서 조성했을 것이라는 점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제발에 보이는 ‘공수(拱壽)’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요, ‘학과 복숭아’는 수연(壽宴)에 어울릴 법한 소재였다. 18세기 이후의 임인년은 1782년, 1842년, 1902년에 해당하는데 이 중 1902년은 고종이 51세가 되어 60세를 바라본다는 망육순(望六旬)이 된 해였다. 1902년 고종은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했고 황태자 순종은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해 그해 여름에 큰 잔치를 열었다. 고종의 생일은 대한제국의 국경일인 황수성절(皇壽聖節)로 격상되었다. 금박해학반도도는 국내외 인사들이 초청된 황수성절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었다.


美 오하이오서 발견된 쌍둥이 작품, 데이턴미술관 소장 '금박해학반도도'

보존처리가 이루어진 호놀룰루미술관의 금박해학반도도는 하와이로 돌아간 이후 지난 13년간 미국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여러 차례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런데 2017년 미국 오하이오 데이턴미술관(Dayton Art Institute)에 호놀룰루미술관 소장본과 매우 유사한 작품이 한 점 더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배경 전반에 금박을 부착한 점, 호놀룰루 본과 유사한 크기, 12폭의 비단에 그려진 점, 해학반도라는 화제를 고려할 때 이 또한 한국 유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데이턴미술관에서 금박해학반도도를 실견해보니 이것이 호놀룰루 본과 쌍둥이라 할 만하다는 확신이 더해졌다. 다만 데이턴 본은 호놀룰루 본의 도안을 좌우 반전한 듯한 구도를 보인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데이턴 본에는 가운데 학이 앉은 괴석을 중심으로 우측 상단에 해가 떠 있고 좌측에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서 중국,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바뀐 국적

이 금박해학반도도는 1941년 9월 데이턴미술관에 기증됐다. 기증자는 미국인 사업가로 1920년대 후반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후 뉴욕에 있는 자택의 응접실 크기에 맞게 작품을 수리했고 한번 벽면에 부착된 작품은 10년 이상 생활 공간에 노출되었다. 그런데 기증자도 기증을 받던 박물관 측에서도 이 유물을 일본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58년 미국 내 1세대 중국미술사학자로서 데이턴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근무했던 셔먼 리(Sherman E. Lee, 1918~2008)가 이 작품을 ‘중국 16∼17세기 그림’이라 감정하면서 작품의 국적은 다시 중국으로 바뀌게 된다. 1978년 프리어갤러리(Freer Gallery of Art)에서 서화의 장황을 담당하던 스기우라 다카시(Sugiura Takashi) 또한 금박을 처리한 기술로 보건데, 일본 작품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중국 작품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이 작품은 30년 후인 2007년 일본 도쿄대학 연구팀의 실사를 통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중국 작품으로 전했던 이 작품은 2018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방문 조사 및 국내외 자문단의 논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한국 국적으로 판명 날 수 있었다.

병풍이냐 패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현재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금박해학반도도는 6폭짜리 두 점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는 7m가 넘는 너비로 인해 본래의 12폭 병풍이 다루기 쉽지 않다는 호놀룰루 측의 의견에 따라 2006년 보존처리 당시 고창문화재보존 측이 두 개의 병풍으로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데이턴미술관 금박해학반도도 또한 하나의 연결된 대형 패널 형태였던 것을 쉽게 펴고 접을 수 있도록 병풍 형태로 바꾸었다. 이는 한국 미술을 다루는 데에 익숙지 않은 외국 기관을 배려한 결정이었다. 문화재는 빛과 공기를 만나면 조금씩 훼손되게 마련이지만 전시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알릴 기회도 잃게 된다. 조금이나마 더 자주 세상에 나올 수 있다면 그 또한 문화재의 소임을 다하는 일이 될 것이다.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지원의 의미

오랜 시간 국적 미상으로 외국 박물관의 수장고에 쌓여 있던 우리 문화재들이 있다. 그중에는 제대로 된 학술적 조명만 이루어졌어도 우리 역사를 빛내는 데에 활용될 수 있고 보존처리만 이루어졌어도 전시에 나올 만한 유물들이 많다. 이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부도덕한 방식으로 반출된 것도 있다. 그러나 국외에 있는 모든 문화재가 불법적으로 도난된 것은 아니다. 아무도 조선을 몰랐던 시절 이 땅에 왔던 선교사, 의사, 외교관, 사업가들은 왕실에서 미술품을 선물 받기도 했고 적법한 과정을 거쳐 미술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세계가 눈부신 한국의 문화 역량을 재발견하는 중이다.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머나먼 타국에서나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제 역할을 다 하는 방법일 것이라 믿는다. 데이턴미술관 소장 금박해학반도도는 최근 보존처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된 후 내년 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김수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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