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갇혀 16시간, 홀로 버틴다... "노래교실·교회 바삐 다녔는데"

입력
2020.12.08 04:30
12면
[코로나시대 벼랑 끝 노인들] <하> 깊어지는 우울증


"어서 와요."

옷깃에 비즈 장식이 달린 예쁜 보라색 재킷이었다. 최근 만난 김애자 할머니(80)는 곱게 화장한 얼굴에다 환한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거의 1년 만에 집 안에다 들이는 손님이라 했다. 그러니 그간 별로 꺼낼 일 없었던 외출복을 차려입고 내버려뒀던 화장품을 꺼내들었을, 모처럼 만에 분주했을 할머니의 아침이 그려졌다.


16시간 동안 홀로 운동, 식사, TV 보기, 성경책 읽기 반복

경기 광명에서 혼자 사는 김 할머니의 집 안은 단출했다. 거실 가운데 TV가 있고, 맞은편에는 방석과 리모컨, 그리고 두꺼운 공책과 펜, 안마기가 거의 전부였다. 할머니에게 하루 일과를 물었다.

“하루 일상 생활이라는 게 집에 앉아 있는 것밖에 없어. 나갈 수가 없으니까. 10시에 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내 친구야. TV 없으면 어떻게 살았겠어.”

할머니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집 안에서 걷기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를 한 후 공책과 펜을 들고 TV 앞에 앉는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건강 프로그램을 보며 건강 정보를 공책에 적는 게 유일한 낙이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집 앞 놀이터로 나가 30분 정도 햇볕을 쬔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엔 TV에 나오는 트로트 프로그램들을 본다. 트로트 방송은 한 회도 빠짐없이 다 봤다. 요즘엔 재방송만 해서 다른 방송을 보거나 성경책을 읽는다. 오후 6시쯤 저녁을 먹은 후 또 TV나 성경책을 본다. 혈압을 재고, 찬송가를 다섯 곡 부른 후 잠자리에 누우면 밤 10시.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16시간을 홀로 운동, 식사, TV 시청, 성경책 읽기를 반복하며 보낸다. 코로나19 이후 노인들의 하루하루는 ‘시간과의 싸움’이 됐다.


“인내심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지낸 건 2월부터다. 이전엔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고 노래교실도 8년이나 다녔다. 한때 노인대학을 다녔고, 부지런히 봉사활동도 했다. 집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6년 전 아들 내외가 분가한 후로 혼자 살았지만, 그래서 적적하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았다. 재작년 고관절에 금이 가 몸이 불편해졌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교회도 나가고 자녀, 친구들과 만났다.

코로나19가 이 모든 걸 바꿨다. 1남2녀 중 둘째 딸은 지난 2월 코로나19 유행 이후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지난 추석에도 아들 가족만 만났다. 행여 고령의 어머니에게 바이러스라도 옮길까 봐 자녀들이 더 조심한다. 친구들과도 가끔 안부 전화나 할 뿐, 되도록 모이지 말자 한 지 오래다. 가끔 병원에 갈 때를 빼곤 늘 집에만 있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 이렇게 하루 종일 혼자 집에 계속 들어앉아 있다 보니 목숨을 버리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딱 두 번 들었어."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소한 순간들이 있다. 하나는 성경이다. 외롭다 싶으면 성경을 봤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나쁜 생각일랑 하지 말아야지 했지.” 다른 하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집으로 찾아오는 문주리 생활지원사다. 생활지원사는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 인력이다. 문 지원사는 주에 한 번 정도 찾아와 한 시간 정도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준다. 김 할머니는 곁에 있던 문 생활지원사의 손을 슬그머니 잡더니 "이런 사람이 좀 옆에 와서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할머니가 사는 경기지역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1.5단계로, 2단계로, 2.5단계로 계속 격상됐다. 앞으로 나아지겠지 싶으면 더 힘이 나겠건만, 일상이 회복되는 날이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 할머니는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이제는 고독도 우울도 없고, 마음 비우고 인내심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많이 해.”


노인들의 코로나 블루 = 병에 대한 공포 + 억울함 + 박탈감

문주리 생활지원사는 "그래도 김 할머니는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자녀 등 다른 사람과의 교류 없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예전에는 너무 무료할 때면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라도 다녀왔는데, 지금은 그런 재미조차 사라졌다.

"반지하에 있는 방 한칸에 냉장고, TV, 장롱 등 살림살이를 다 놓고 복지관에서 주는 음식만 먹고 사는 어르신도 계세요. 코로나 시대여도 신체적, 경제적 능력이 있는 어르신들은 나름의 재미를 찾아다니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집에서 그저 TV만 보며 지내시는 거죠." 나름 꼼꼼히 챙긴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할머니들의 일상이 늘 똑같다 보니 때론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인사말도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고립된 생활은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해친다. 광명시립 하안노인종합복지관 윤영미 부장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다 보니 고독감에 빠지고, 자기가 ‘가치 없는 사람’ ‘폐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증폭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안노인종합복지관이 지난 6월 독거노인 523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여부를 전수조사했더니 3명 중 1명(159명·30.4%)이 '중증 우울' 증세를 보였다.

문주리 생활지원사는 "한 어르신은 '젊은 시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너무 비참하다'며 '요즘 쉽게 빨리 죽는 법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셔서 얼른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결해드린 적이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확실히 우울하다는 분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코로나 블루’는 우울에다 공포감까지 결합되어 있다.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노인들 치명률이 높다 보니 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거의 공포 수준”이라며 “여기에 ‘나이든 것도 서러운데 코로나19까지 노인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억울함, 박탈감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블루 완화를 위한 작은 시도들이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안노인종합복지관의 경우 독거노인들에게 콩나물 재배 키트를 제공했다. 집에서 콩나물을 기르며 옛 추억을 되살리고, 생명력을 느끼고, 돌봄과 애착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일종의 원예치료 개념으로 접근한 것.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조승철 하안노인종합복지관장은 “처음엔 귀찮다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키우면서 콩나물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셨고, 한 끼 반찬으로 드시며 수확의 기쁨까지 느끼셨다”며 “지난달에 콩을 한 번씩 더 드렸고,이번달에는 새싹 키우기 키트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도 그랬다. "노인복지관에서 나눠준 콩으로 콩나물을 키우는데, 콩나물 때문에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몰라. 자식 키우는 것 같아.” 하지만 웃음소리는 낮았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