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과제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마음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담임에게 제출하기 전 보여준 영상에는 지난 6년 동안 몸담았던 학교 곳곳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영상 중간쯤에 지나간 교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 책상마다 양 옆과 앞 모서리에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돼 있고, 아이들 모두 마스크를 써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마지막 1년간 제대로 등교도 못해본 채 정든 학교를 떠날 생각에 아쉬웠는지 아이는 졸업 영상 숙제에 유독 공을 들였다.
많은 학부모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포기한다 치고 아이들이 내년에라도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확 떨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백신 공급밖에는 방법이 없다. 올 연말과 내년 해외 주요 국가들은 잇따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할 태세다. 현재 유명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백신의 효과도 대부분 예상보다 높게 발표되면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신약 개발에 성공할 확률을 제약업계는 약 1만분의 1로 본다. 1만개를 만들어야 그 중 하나가 제품화에 성공할까 말까다. 바늘구멍 같은 확률을 통과해 시장에 나왔지만, 뒤늦게 발견된 부작용 때문에 퇴출된 신약도 적지 않다. 수백~수천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았어도 수개월, 수년이 지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시험 절차를 단축하거나 일부 생략하며 긴급하게 승인된 신약일수록 이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건 학계에도 업계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신약이다. 어떤 제약사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을 상품화해보지 않았다. 더구나 최근 예방 효과가 90%에 달한다고 경쟁적으로 발표한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들은 제조 방식도 신기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비슷한 인공 유전자를 만들어 체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단백질(항원)을 생산하게 하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유전자(RNA) 백신, 감기를 일으키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코로나19 바이러스 항원을 생산하도록 변형해 주입하는 바이러스 운반체(벡터) 백신 모두 동일한 원리로 상용화한 제품이 지금까지 없었다.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안전성을 검증받은 적이 없는 제조 방식이라는 얘기다.
이들 기업이 백신의 효과 수치를 확보하기 위해 조사한 사람은 현재까지 수백명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임상시험 참가자는 이보다 훨씬 많지만, 접종 후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대상이 제한적이다. 또 접종 후 참가자들을 모니터링한 기간이 수개월밖에 안 된다. 신종 질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임상시험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른 건 고무적이지만, 신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판단하기에 데이터가 충분하다고 결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임상시험에서 별다른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확신에 찬 발표를 했다. 국민들이 접종할 백신을 보건당국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는 제약사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안겼다. 특히 1990년대부터 연구돼왔지만 대규모 임상시험 비용 때문에 좀처럼 상용화의 벽을 넘지 못한 유전자 백신이 코로나19 덕분에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으며 날개를 달고 있다. 각국 정부는 앞다퉈 승인 절차를 서두르며 환영하는 모습이다. 오랫동안 백신을 연구해온 업계 한 전문가가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효과 발표 직후 전화 통화에서 “우리가 RNA 백신을 못 만들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화이자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들은 백신 효과를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사 주식을 팔았다. 발표 이후 이들 기업의 주가가 크게 올랐으니 당연히 많은 이익을 챙겼을 것이다.
기업들과 정치인들이 공언한대로 머지않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면 지금까지 나온 어떤 신약보다 임상시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안전성을 확신할 만한 근거가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이 어서 백신을 접종해야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부모들은 마음 놓고 일하는 일상이 돌아올 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내년 이맘때는 모든 아이들의 교실에서 책상 위 가림막이 사라져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