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위안부 영화 보고 눈물" '독일 소녀상' 지킴이 된 두 여고생

입력
2020.12.03 14:51
23면
서울 계성고 나유정ㆍ진영주양
독일 베를린 평화의소녀상 철거 반대 감사편지 운동 이끌어
'위 캔 스피크'... 소녀상 건립 해외도시 응원 챌린지도 주도


"독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인 위안부 희생자를 추모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줘 정말 감사합니다."

서울 성북구 계성고에 재학 중인 진영주(17)양은 최근 독일 베를린 미테구 주민들에게 편지를 썼다. 현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항의하며 철거를 막아 줬던,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진양은 독일어로 '감사하다'는 뜻의 'Danke Schön'을 편지에 생전 처음으로 꾹 눌러썼다. 편지지 뒷면엔 윤동주 시인이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며 쓴 '별헤는 밤'의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진양뿐만이 아니다. 성북구 26개 초ㆍ중ㆍ고교 학생들도 소녀상 철거를 막아준 독일 주민들에 보내는 감사 편지 쓰기에 나섰다. 미테구 소녀상 철거명령 중지 가처분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월, 계성고 학생들은 '고마워요 독일 국민' 손편지 쓰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주변 학교 학생들이 동참하면서 릴레이처럼 확대된 것이다. 그렇게 모인 편지는 약 3,600통. 성북구는 이 편지들을 독일 미테구로 보낼 예정이다.



계성고에서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 감사 편지 운동을 주도한 주인공은 나유정ㆍ진영주(17)양이다. 3일 전화로 만난 나양은 "일본 항의로 독일 정부가 지난 9월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화가 나더라"며 "어떻게 소녀상 지키기에 뜻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현지 시민들이 철거 명령에 저항하며 시위를 벌여 철거가 보류됐다는 소식을 접했고, 학교 2학년 모든 교실에 관련 뉴스를 붙인 뒤 편지 쓰기 운동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시작한 지 사흘 만에 2학년 전체 학생(280명) 중 3분의 1(100명)이 편지를 써 보내줬다.


나유정ㆍ진영주양은 평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해엔 동아리 '위 캔 스피크'를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평화의소녀상 건립 해외도시 응원 챌린지'도 주도했다. 동아리 이름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007년 미국 의회 공개청문회에서 증언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반향을 낳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따왔다. 진양은 "고등학교 1학년 자치활동 시간에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눈길'을 너무 가슴이 아파 울면서 봤다"며 "그 뒤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나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역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위안부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됐고, 그때 충격을 받아 위안부 문제에 꾸준히 귀를 귀울였다.


두 학생은 대학에 가서도 위안부 지원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미테구의회는 지난 1일(현지시간) 소녀상 영구설치 결의안을 의결했다. 소녀상이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 영원히 머물게 될 길이 열린 셈이다. 이 소식을 두 학생에게 카톡으로 전하자 이런 답문이 돌아왔다.

'오 정말요?? 기사 찾아봐야겠네요TT'(나양) '헐 대박!! 정말 감사하네요T'(진양)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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