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로수를 잘라야만 할까

입력
2020.12.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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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피렌체 대성당의 돔에 오른 적이 있다. 1436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대성당 꼭대기인 돔에 오르면 적갈색 기와를 얹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가득한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문득 이 도시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건물도 없지만, 낮은 건물도 별로 없다. 5~6층짜리 건물이 빽빽한 전형적인 저층고밀도의 도시다. 건물 사이 간격은 좁다 보니 길은 늘 어둡다. 건물이 만들어낸 그늘에 점령당한 도시는 우울하다. 이 도시의 광장은 멋져 보이지만, 광장이 없었으면 숨이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건물 중정에 장식처럼 한 두 그루의 나무가 있을 뿐, 피렌체의 오래된 거리에는 나무가 없었다. 가로수가 없는 도시. 순간 찬란한 역사문화도시 피렌체가 삭막하게 느껴졌다. 난 그 도시에서 행복한 3일을 보냈지만, 행복한 3년을 보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7년 전, 남이섬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은 정말 즐겁고 평화로운 시간을 남이섬에서 보냈었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장소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흙길이었고, 흙길을 사이에 두고 두 줄로 나무가 심겨 있었을 뿐이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에 다녀오면, 이런 장소가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두 줄 가로수가 있다면 출퇴근하는 길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멀리 여행을 가서나 얻을 수 있는 호사를 일상에서 누리는 시민들이 있다. 대구 시내 한복판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대구를 대표하는 공원 중 하나다. 그런데 공원보다 더 유명한 곳이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인근 700여m에 달하는 길에는 대왕참나무가 두 줄로 심어져 있다. 두 줄 가로수는 하늘을 차지하려 위로, 옆으로 가지를 뻗는다. 두 나무가 만나 터널을 이루고, 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은 도심 속 숲이 된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을 선사한다. 다람쥐 모양의 귀여운 도토리는 덤이다.

대구시는 1996년부터 본격적인 가로수 식재에 들어갔다. 교통섬과 중앙분리대에 나무를 심었고, 가로수를 두 줄로 심었다. 4,000만그루의 가로수가 새로 심어졌다. 두 줄 가로수는 시민들의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찾아 일부러 그 길까지 가기도 하지만, 시내 곳곳에 조성된 두 줄 가로수길은 시민들이 출퇴근하고, 등교하고, 쇼핑하러 다니는 일상의 공간이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에 숲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어떤 도시는 두 줄 가로수길을 만드는 와중에, 어떤 도시는 오래된 가로수를 잘라낸다. 서울의 서순라길은 보도가 좁다는 이유로 환상적인 단풍을 선사하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돈화문길을 따라 서 있던 40년생 플라타너스는 돈화문을 가린다는 이유로 베어졌다. 덕수궁 돌담 옆에서는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돌담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돌담보다 오래된 플라타너스를 베려다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멈췄다. 대전 서구 일대에는 아름드리 튤립나무와 회화나무 360여그루를 베고 어린 중국단풍과 왕벚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약하고 진액이 흘렀다나 뭐라나. 충북 청주시 가경천에서는 하천 정비사업을 이유로 수십 년 된 살구나무 150여그루를 베었다가 주민 항의로 공사를 멈췄다. 충북 제천시 청풍호반의 명물 왕벚나무 200여그루는 도로공사를 이유로 식재된 지 40년 만에 베어졌다. 주민이 반발하자 제천시는 벌목을 중단하고 남은 나무를 보존하거나 재이식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다들 이유는 있다. 도심의 가로수는 자연 상태의 나무와는 달리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고, 선택과 조절의 여지가 있다. 가로수의 효능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로수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항의나 민원을 받았을 때, 새로운 취향이 생겼을 때, 너무도 쉽게 가로수를 잘라내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 잘라진 가로수의 밑둥이 드러난 길이 아닌, 나뭇가지가 하늘을 뒤덮은 도시를 걷고 싶다.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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