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와 지구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네 화두는 ‘뉴노멀’과 ‘불평등’, ‘포퓰리즘’과 ‘페미니즘’이다. 뉴노멀, 불평등, 포퓰리즘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질서의 변화가 낳은 경제ㆍ사회ㆍ정치적 결과들이다. 페미니즘은 근대 초기에 기원을 둔 오래된 운동이다. 그러나 동시에 2020년대에도 여전히 열어야 할 새로운 미래다.
전통적 사회학의 시각에서 여성문제에 접근하는 데는 성(sex)과 젠더(gender)의 구분이 중요하다. 성이 남성과 여성 간의 해부학적 차이를 말한다면, 젠더는 양성 간에 존재하는 사회ㆍ문화적 차이를 의미한다.
주목할 것은 이 젠더가 교육과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 간의 사회적 불평등은 타고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이 처한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에 주목해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모색한 이론 및 실천을 말한다.
먼저 역사적 측면에서 페미니즘의 발전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세대 페미니즘은 근대 초기까지 올라간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그 대표적인 저작들이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선구적으로 설파했고, 밀은 참정권을 위시해 여성 또한 법적ㆍ정치적 평등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부와 권력을 소수 남성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가부장제를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제2세대 페미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운동의 발전과 긴밀히 연관됐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1963),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1970),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1970) 등은 제2세대를 대표하는 주요 저작들이었다.
보부아르가 여성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점을 밝혔다면, 프리단은 결혼과 가정이 여성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밀렛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파이어스톤은 여성 억압을 임신과 출산에서 찾고, 여기에 기반하고 있는 가부장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3세대 페미니즘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흐름이었다. 이들은 탈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생태학의 사유를 적극 수용했다. 제3세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미친 이는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였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1990)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사회ㆍ문화ㆍ역사적으로 구성되며, 반복된 ‘수행’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성과 젠더의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는 버틀러의 논리는 퀴어 이론의 한 출발점을 이뤘다.
한편 이론적 측면에서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퀴어 이론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밀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엥겔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대변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제2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관점이었다. 이들은 가부장제를 통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착취한다는 점을 특히 주목하고 또 강조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부장제는 젠더 불평등을 지탱시키는 사회질서의 핵심이기 때문에 성평등은 이 가부장제를 전복시켜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제3세대 페미니즘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는 관점이었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보편적 범주가 부재하고, 이성애자ㆍ레즈비언ㆍ흑인여성ㆍ하층여성 등 이질적 여성 개인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퀴어 이론은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 이론으로부터 영향 받아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담론에 의해 유동적으로 구성된다고 파악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성애와 동성애 등의 이분법적 정체성 및 규범을 거부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근대사회의 발전과 함께 다채로운 이론들을 주조하고 내놓았다. 성평등이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인 만큼, 이 민주주의가 우리 인류에게 계속 진화해온 목표인 만큼, 페미니즘 역시 부단한 심화와 확장을 모색해온 셈이다.
앞서 말했듯, 페미니즘은 이론이자 실천이었다. 실천의 측면에서 페미니즘은 세 차례 물결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첫 번째 물결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참정권 등 여성 권리를 증진시킨 시대였다면, 두 번째 물결은 1960년대 이후 여성의 해방과 정치 세력화를 추진한 시대였다. 두 번째 물결에서 여성운동은 환경운동, 평화운동, 소수자운동 등의 신사회운동과 정치적 연대를 추구하기도 했다.
세 번째 물결은 1990년대 이후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 세계화의 충격, 정보사회의 도래가 여성운동에도 영향을 미쳐 다양성과 차이를 중시하는 여성운동이 전개됐다. 이 세 번째 물결은 제도개혁에 더해 문화혁신 또한 부각시키고, 집단으로서의 여성에 더해 개인으로서의 여성에도 초점을 맞추며, 서구적 관점에 더해 비서구적 관점까지를 포괄했다.
2011년에 일어난 ‘슬럿워크(slut walk)’ 행진은 세 번째 물결의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여성은 야한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는 한 경찰관의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새로 거리를 행진했다. 지구적으로 확산된 이 행진은 여성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당당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슬럿(잡년)’에 담긴 남성중심적 사유를 해체하고자 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21세기에 들어와 대중화하고 일상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에는 특히 정보사회의 진전이 중요했다. 온라인 공론장의 활성화는 일국적ㆍ지구적 차원에서 여성 이슈들의 폭 넓은 공유를 가능하게 했다. 더하여, ‘맨스플레인’을 유포시킨 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2014) 등 일련의 페미니즘 저작들은 페미니즘의 일상적 실천이 갖는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데 작지 않게 기여했다.
2020년대에 페미니즘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째, 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따라서 어느 나라든 가부장적 질서를 해체하고 성평등을 구현하려는 제도혁신과 문화혁신이 계속 진행될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
둘째, 이러한 실천에서 중요한 것은 태도와 의지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유보하기 시작하면 여성의 지위는 결코 나아지기 어렵다. 세 번째 물결에서 볼 수 있듯, ‘지금, 여기서’의 일상적 실천이 중요한 까닭이다. 2020년 현재 분명한 것은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은 2020년대에도 인류의 ‘오래된 미래’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또 영향력을 확대해 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발전하는 데는 1970년대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후자의 그룹은 ‘여성사연구회’ ‘또 하나의 문화’ 등을 만들어 페미니즘 담론을 펼치고, 이를 여성운동에 접목시켰다.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역사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여성의 시민권 확보를 모색했다면,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호주제 폐지 등 성평등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개혁에 주력했다. 이어 2015년부터는 대중이 주도하는 여성운동이 본격화됐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 항의하는 대중 집회는 그 중요한 출발점을 이뤘고, 이러한 흐름은 2018년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면서 페미니즘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여성의 문제는 중요하다. 여성학자 김은실이 편집한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2020)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여성학자 김현미는 코로나19 팬데믹에의 대응이 여성의 노동ㆍ공감ㆍ돌봄 능력에 기대고 있음에도 그 극복은 경제회복의 차원에서만 추진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 대한 상상에서 여성, 소수자, 자연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김현미의 주장은 귀 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생태학과 함께 앞서 말했듯 우리 인류의 ‘오래된 미래’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의 하나라면, 차별 없는 성평등은 이 시대정신을 이루는 핵심 가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