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文대통령 비판에 '盧 전 대통령' 자꾸 불러낸다..왜

입력
2020.11.30 09:00
野 "민감한 사안 입장 표명 없어" 리더십 부재 지적
평론가들 "두사람 비교해 文 평가 절하·갈라치기"

"검찰 수사를 담담히 받아들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울고 계신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임기 중 기자회견 노 전 대통령은 150번, 문 대통령은 1년에 1번 꼴." (원희룡 제주지사)

야권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공세를 펼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듭 불러내고 있다. 왜 야권은 현 정국에서 유독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과 비교하는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왜 일까.

야권 '노무현-문재인' 비교 강화…"文, 盧처럼 국민 앞에 서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먼저 과거 자녀의 검찰 수사를 지켜봤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를 거론했다. 이어 현 정권 관련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장관을 거론한 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월성 원전 평가 조작, 라임·옵티머스 수사를 언급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직무배제·수사의뢰를 두고 '검찰 무력화 목적'이라 규정했다. 이어 "이 정권 사람들에 대한 면책특권이 완성되는 순간, 대한민국의 공화정은 무너질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 그게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인가. 검찰 수사를 담담히 받아들였던 노 전 대통령이 울고 계시다"라고 말했다.

앞서 같은 당 배준영 대변인 역시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 이튿날인 26일 '정치가 법치를 순화하는가'라는 논평을 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검찰개혁이 그렇게 당당하다면, 노 전 대통령처럼 '평검사와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최소한 기자회견이라도 해서 국민들 앞에 입장을 밝혀야하지 않겠느냐"고 질타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도 이날 SNS에 "노 전 대통령은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정면으로 받아들였고, 문 대통령은 회피하고 있다"며 "임명권자가 명확하게 얘기하면 검찰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도 문 대통령은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데, 그에 따르는 부담과 책임이 싫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강조한 후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더십에 대한 지적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원희룡 제주지사는 소통 부재를 들어 노 전 대통령과 비교했다. 원 지사는 28일 SNS에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150번이나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문 대통령은 1년에 한번 꼴"이라며 "기자회견 뿐 아니라 문 대통령은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도 침묵할 뿐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창열 "노 전 대통령 비판했던 야당이 치켜세우는 건 어색"

이를 두고 정치평론가들은 야권이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과 검찰개혁에서 파생된 법무·검찰 갈등에 문 대통령이 적극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 민심을 감지, 여론을 주도하고 여권 내에서도 친문(親文)과 비문(非文)을 갈라치기 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상일 캐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답답한 국민 여론을 야권에서 인지해 정치적인 공격 지점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현직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싸우는데 아무 말 않고 있는 것은 '중립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 자체가 없거나, 묵시적으로 그 싸움 자체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냐'고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노무현 정권이 검찰개혁 시발점이기도 했고, 탄핵 또는 구속된 보수 정권의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보다는 '노무현 정신에 이게 맞는 것이냐'는 질문이 여권에 아픈 부분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 또한 "노 전 대통령과 자꾸 비교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리더십이 없다, 갈등 조정 등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해태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여권 지지자들로 하여금 노 전 대통령을 떠오르게 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를 격하하고, 같은 진영 내에서도 갈라치기를 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에 YS나 DJ 보다는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리더십을 두고 비판을 쏟아냈던 야권이 지금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부동산 문제는 굳이 공격하지 않아도 충분한 민생 체감 이슈인데다, 사실 야당도 뚜렷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으니 공격 논점이 정치적 맥락, 통치 방법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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