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모두 집어 삼켜버린 2020년이었지만, 단순히 코로나로만 기억되기엔 시대적 과제가 수두룩하게 쏟아진 한 해였다. 팬데믹이 야기한 인류의 위기 같은 거창한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한국 사회를 여전히 달구고 있는 정의와 공정, 불평등 이슈에 어떻게 응답할지를 두고 출판계는 여느 해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들여 책을 만들어 냈다.
그 덕일까. 올해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최종 응모작은 1,293건으로 작년보다 좀 더 늘었고, 단번에 “좋은 책”이라고 손꼽을만한 책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2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예심에 참여한 7명의 심사위원들은 “다양한 시대적 이슈를 놓치지 않고 호흡하려는 출판계의 노력이 돋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학술, 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ㆍ청소년 5개 부문별 각 10종씩 총 50권이 본심에 올랐지만, 막판까지 후보작을 두고 고심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최종 후보작은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페이지(https://www.hankookilbo.com/Series/S2020112509280003305)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출판계의 특이점은 주류로부터 배제 당한 비주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책으로 뚫고 나오는 흐름이 도드라졌다는 거다. 교수나, 작가, 전문가만 책을 냈던 과거와 달리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해, 집단의 대표성을 획득하거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춰내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농인(聾人)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聽人) 자녀인 코다들의 삶을 세상에 소개한 ‘우리는 코다입니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9년 넘게 부양한 흙수저 아들의 기록인 ‘아빠의 아빠가 됐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은 ‘김지은입니다’는 본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회의 의미 있는 울림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이날 심사에서 학계와 출판계의 ‘세대교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젊은 편집자들과 젊은 학자들이 만나 인문학의 새로운 담론을 찾아 나선 인문잡지 ‘한편’이 쏘아 올린 화두였다. 내용의 완성도나 형식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나왔지만, 심사위원들은 이른바 86세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주름잡은 학계와 출판계에 청년세대가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지적 토양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엔 동의했다.
올해 출판문화상 심사위원은 학계와 출판계를 고루 안배하는 변화를 꾀했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안희곤 사월의책대표, 이수미 나무를 심는 사람들 대표, 김문정 전 시공주니어 이사가 새로운 심사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초 올해부터 예정됐던 문화체육부장관상은 시상 부문을 정비해 내년부터 신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