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파온 전문 번역가의 힘, 좋은 책 골라내는 감별사 역할도

입력
2020.11.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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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번역 부문 10종

번역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도 빛을 못 보기 마련. 번역자는 저자 못지 않은 책의 주인공이다. 특히 올해는 ‘한 우물만 파온 전문 번역가’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향모를 땋으며’의 김명남, 노승영 번역가는 과학 전문 번역자로서 굳건한 입지를 보여줬다. ‘제국의 브로커들’ 역시 한일관계와 일본 역사 번역에 매진해온 한승동 번역가의 전문성이 돋보였다는 호평이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김승진 번역가는 번역 실력은 물론 좋은 책을 골라내는 눈이 뛰어나다는 칭찬이 나왔다.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의 일대기를 다룬 ‘비코 자서전’,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도 전공 분야의 외서를 한국화하는데 노력해온 번역자의 공이 컸다. 99가지의 문체 변주를 선보인 역작 ‘문체연습’을 번역한 조재룡 교수에 대해서도 찬사가 이어졌다. ‘배움의 발견’, '2050 거주 불능 지구'도 번역의 노련함으로 읽는 맛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의 '전쟁과 가족'은 번역도 번역이지만 책 자체가 높은 점수를 샀다.



▦비코 자서전

잠바티스타 비코 지음·조한욱 옮김·교유서가 발행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가 원숙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에 대해 스스로 기술한 고백록. 비코가 독서를 통해 스스로의 사유 체계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통해, 훗날 저술할 업적 ‘새로운 학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시 유럽 세계에서의 학자들의 교류 방식이나 평판 형성 방식 등 당대 지식인들의 모습과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김승진 옮김·생각의힘 발행

실험 기반의 접근법으로 빈곤 퇴치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두 경제학자의 책. 이민, 세계화, 자동화와 실업, 경제 성장, 환경, 정부의 역할 등 오늘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다루며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쁜 경제학과 좋은 경제학이 무엇인지 알려주면서, 좋은 경제학이 당면한 이슈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전쟁과 가족

권헌익 지음•정소영 옮김•창비 발행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인 올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냉전연구로 세계 인류학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오른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한국의 전통적 공동체를 분석틀로 내세워 한국전쟁을 분석한 역작이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들이 처했던 현실과 폭력이 작동한 방식을 가족과 친족의 관계적 관점을 돌아보며, 냉전적 근대성의 본질까지 묻는다.



▦제국의 브로커들

우치다 준 지음·한승동 옮김·길 발행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70만 일본인의 밝혀지지 않은 역사를 조명한다. 저자는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시각을 통해 이들 일본인 정착민들이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의 각 단계마다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다. ‘조선총독부-민중’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탈피해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파헤친다.



▦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조재룡 옮김·문학동네 발행

1947년 레몽 크노가 발표한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 역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한 젊은이를 우연히 버스와 광장에서 두 번 마주친다는 일화를 바흐의 푸가기법에 착안해 99가지 문체로 거듭 변주해낸다. 다양한 문체가 지닌 잠재성과 혁명적인 힘을 보여준다. 한국어판에는 원서 이외에도 차후 플레이아드판에 실린 문체 연작에서 10편을 더 뽑아 함께 수록했다.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 발행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깨달은 것들을 쓴 책. 저자는 이 책에서 옛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 원주민들의 토박이 지혜와 과학의 섞어짓기를 모색한다. 감사의 문화와 선물경제의 의미를 되살리는 원주민의 전통과 지혜 속에서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상품경제와 문화를 성찰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을 소망한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김명남 옮김·사이언스북스 발행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동명의 다큐멘터리의 대본을 바탕으로 쓰인 책으로, 시각적·형식적으로 한계를 가진 다큐멘터리에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을 온전하게 담았다. 총 13장으로 구성돼 우주와 생명의 기원, 자연의 숨겨진 법칙 등을 탐구한 과학자들과 그들 덕에 알 수 있게 된 세계들을 소개한다. 과학사의 잊힌 영웅들을 조명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 방법을 강구한다.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마크 해리슨 지음·이영석 옮김·푸른역사 발행

영국 의학사가 쓴 12년 연구의 결실. 700년에 걸쳐 6개 대륙에서 벌어진 전염병과의 투쟁을 꼼꼼하게 살핀다. 14세기 페스트부터 21세기의 사스와 메르스까지. 관련 학자의 선행연구는 물론 다양한 세미나와 학술대회를 참고했으며, 인도 등 여러 나라의 기록을 살핀다. 광대한 지리적 범위에 걸친 무역과 전염병의 장기간의 상호작용을 추적한다.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김희정 옮김·열린책들 발행

아버지의 왜곡된 신념으로 교육 환경에서 소외된 채 자란 저자가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얻기까지의 남다른 배움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배움이 무엇인지, 배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보편적인 성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에 대한 인식의 전환, 삶의 변화 의지 등 저자가 배움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한다.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김재경 옮김·추수밭 발행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아, ‘뉴욕매거진’에서 가장 많이 읽힌 2017년 리포트 ‘거주불능 지구’가 확장 출간됐다.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2050년 맞게 될 기후변화의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지구온난화의 실제적인 영향과 그림을 제시하고,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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