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도체 굴기' 美 기술규제 2년만에 하나둘 고꾸라진다

입력
2020.11.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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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첨단 기술·인재 접근 차단시켜
中정부 지원 기업들 결국 문 닫아
삼성 등 대대적 투자로 '초격차' 유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천명한 '반도체 굴기(崛起·일어섬)'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 주도로 성장한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고꾸라지고 있다. 첨단 기술 패권을 두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에 나선 지 2년 만에 그 영향이 가시화하고 있는 결과로 해석된다.

22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16일 13억위안(약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칭화유니는 만기 연장을 채권단에게 요청했으나, 최종 무산됐다. 칭화유니의 부채는 528억위안(약 9조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칭화유니는 시진핑 주석이 졸업한 칭화대가 소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국영 기업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 계획의 핵심으로 주목받아왔다. 2018년 4월 시 주석은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을 찾아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고 말하며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 최초로 7나노미터(nm) 공정 양산을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우훙신반도체제조(HSMC)는 최근 후베이성 지방정부에 매각됐다. 2017년 11월 설립한 HSMC는 세계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의 TSMC의 최고 운영책임자(COO) 출신 장상이(蔣尙義)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도 10나노미터 이하 공정을 양산하는 데 성공한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HSMC는 중국 정부 등으로부터 1280억위안(약 21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시제품조차 만들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업계는 미국의 강력한 수출 규제 영향으로 핵심 인재와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만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 당시 10%대 수준의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패권 도전에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8년 4월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ZTE를 시작으로 중국의 주요 기술 기업을 수출 통제 목록에 포함해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했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을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만큼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푸젠진화반도체(JHICC)는 2019년 1월 D램 사업을 중단했다.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를 제작하는 하이실리콘,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 역시 현재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결국 중국의 반도체 자급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6%에 그쳤다.

중국의 추격을 받아왔던 국내 업체들은 대대적 투자를 단행해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투자에 약 35조2,000억원을 쏟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전년 대비 30%를 늘린 수치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인텔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사업 부문을 10조원에 인수하면서 5년 내 낸드플래시 매출을 3배 이상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견제로 중국 기업들의 성장이 상당 기간 지연되면서 국내 업체들에게는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며 "아예 추격할 수 없을 수준까지 도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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