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걷히자 짙게 깔린 구름 너머로 노고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18일 오전 7시, “오늘 좀 늦었다”는 손원태(70)씨가 장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트럭에서 하얀 스티로폼 상자를 꺼내 좌판을 만들더니 그 위에 나물을 쏟는다. 퉁퉁한 봉지에 담긴 토란도 얹어 놓는다. 남편 정정성(72)씨가 트럭에서 타이어 달린 파라솔을 내려주자 손씨는 그걸 펼치며 연신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해가 나는 듯하더니 다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또 비가 퍼부을랑가. 비만 오면 심장이 떨려.” 손씨가 입을 열자 옆에서 장사 준비를 하던 다른 상인들이 맞장구를 쳤다. “그날도 처음엔 이렇게 오다 말다 했어. 인자 비 온다 그러면 몸서리가 난다니까.”
손씨는 지리산 인근 구례5일장 거리 두 번째 정자 앞에서 20년 넘게 나물을 팔았다. 거칠게 튼 손등과 손톱 밑을 파고든 까만 흙이 새벽바람을 맞으며 이 곳에 출근한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냉이며 토란이며 시금치며 다듬고 손질하느라 손가락 끝은 세월의 흐름 속에 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밭이 어디냐고 물으니 “온 천지에 냉이고 토란인데, 종일 돌아다니면 된다”고 말한다. “이런 나물은 그래도 좀 나는데 디디기(두더지)가 다 없어졌어. 물이 한참 쟁겨 놔서. 땅에 거시미(지렁이)도 하나 없고.”
전남 구례는 지난 여름 유례 없는 물폭탄을 맞았다. 8월 7일부터 이틀간 쏟아 부은 비의 양은 380㎜에 달했다. 불어난 섬진강 댐까지 방류되면서 마을 입구로 통하는 서시천 둑이 무너졌고 구례5일장 거리와 양정마을은 속절없이 잠기는 등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으로 꼽혔다. 섬진강 수해극복 구례군민대책본부에 따르면, 구례 지역 피해액은 민간 부문만 1,800억여원에 달하고, 관공서와 농어촌공사, 산림조합, 군부대, 축협, 도로, 제방 피해까지 포함하면 5,000억원이 넘는다.
손씨네 집도 당시 지붕까지 차오른 황토물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100일이 지났다. 얼룩졌던 황토물은 거의 씻겼지만, 그날의 충격과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물난리 전에는 신안농장이라고 찍으면 되았는데 이제는 울집이 네비게션에 안 나온다네.” 옆집을 기웃거리는 취재팀을 보고 정씨가 문 앞으로 마중 나오며 말했다. 지난 7월 불의의 화재로 소 20마리를 잃은 정씨 부부의 일상은 꼭 한 달 만에 물난리를 겪으며 다시 한번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달간 구례고등학교와 농협교육원 등지에 머물며 대피소 생활을 한 부부는 지금은 마당에 지은 7평 남짓한 조립주택에서 지낸다. 올 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뛰놀만한 마당과 재울만한 방이 있었으니 손님 맞는 일이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못 쓰게 된 살림살이가 수북이 쌓인 마당을 남에게 보이는 게 달갑지 않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집도 떠내려 가불고 없고, 집이라도 하나쓱 줘야 할 일인데. 1년만 지나면 이것도 시방 뜯어간다고 하니 그 말이 서운하지. 지금은 새끼(자식)들이 와서 자도 좁으니까 복잡해. 며칠 안 있으면 내 생일이라고 또 온다케쌌는데 물난리 불난리 만났는데 무슨 생일이냐고 오지 말라갰어.”
손씨는 보금자리가 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제는 돌아올 수 없게 된 행복했던 일상을 되새겼다. 작년 이맘 때 손씨네 가족은 뒷채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손주들은 마당에 나가 닭이랑 진돗개랑 놀았다. 소가 울면 밤이고 낮이고 축사에 나가 여물을 주고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올해 추석은 전혀 달랐다.
추석 하루 전날 대피소에서 돌아온 부부는 당장 끼니 걱정부터 해야 했다. 양정마을 이장 전용주씨는 추석음식을 못 먹었을 부부를 마을회관에 초대해 잔칫상을 나눌 참이었다. 그러나 손씨 부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휑한 마당을 홀로 지키는 검은 리트리버 한 마리가 낯선 방문자를 경계하며 사납게 짖을 뿐이었다. “트럭은 있는데 사람이 없었어요. 집에 불하나 안 켜져 있고 신발도 없고. 어디 갈 데도 없을 텐데 전화도 안 받습디다.”
혹시나 싶어 창고 문을 열자 이부자리와 흙탕물에 찌든 가재도구가 엉켜있었다. 은박 돗자리를 요 삼아 비좁은 틈에 웅크리고 잠을 청했을 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덜컥 겁이 난 전씨는 곧장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그날 저녁 “딸이 쓰레기더미에 앉았지 말고 바람이나 쐬자고 해서 사위 차 타고 영광에 왔다”는 손씨의 전화를 받은 뒤에야 전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씨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복구 작업에 열을 올렸지만, 수해 직후 그를 괴롭힌 트라우마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소 사체 더미를 뒤덮고 있던 파리떼가 밥상을 공격해도 “여기가 내 집”이라며 대피소로 안내하러 온 공무원을 따라 나서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사위 설영훈(48)씨는 그 길로 손씨 부부를 구하러 나섰다. 통화로 만난 설씨는 “사람이 살 환경이 아니었다”고 입을 열었다. “발목까지 찬 흙탕물에 거름까지 섞여 냄새가 말도 못 했어요. 채 10분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집으로 모시려고 해도 ‘못 떠난다’고 고집하시는 통에 같이 치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씨 부부뿐만 아니다. 재난은 정말로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보금자리가 물에 잠겼고 키우던 가축은 떠내려갔다. 늘 먹던 소박한 식사는 당분간 꿈도 꿀 수 없게 됐고 여벌 옷은 사치가 됐다. 구례 공설운동장에 설치된 임시조립주택에서 지내는 백부만(76)씨는 이른 아침 섬진강 인근 공사현장으로 향한다. 백씨는 "은행에서 수천만원을 빌려 집을 새로 짓고 있지만 잔금을 치를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번듯한 신축 건물 뒤 창고에는 흙탕물에 찌든 호미와 낫, 식기와 대형건조기가 쌓여있었다. 경남에서 태어났지만 섬진강이 좋아 30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는 백씨는 "지붕까지 물이 들어찼던 그날, 섬진강이 나를 죽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재민들을 도우러 나갔던 최아리씨의 일상도 8월 8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매주 목요일 수재민 10명에게 죽을 배달하는 최씨는 물 공급이 끊긴 마을에 물을 나르려고 나섰다가 지금까지도 매주 90대 할머니들과 만난다. 비좁은 골목을 지나던 최씨는 대문이 열린 집 마당을 힐끔 들여다보다 발목까지 찬 진흙탕에 아흔살 넘은 할머니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복구작업이 빠른 시장과 달리 방치된 골목에는 홀로 남겨진 노인들이 있었다. 최씨는 식사도 않고 잠도 뻘밭에 누워 청하며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할머니들을 보며 재난은 언제나 사회의 가장 약한 쪽으로 스며든다는 말을 실감했다.
처참하게 망가진 집이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이재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외로움이다. 물 폭탄이 마을을 덮친 날, 93세 어느 할머니는 거동이 어려워 물이 턱 끝까지 차도록 속수무책으로 둥둥 떠있다가 그를 발견한 옆집 이웃에게 간신히 구조됐다. "자식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웃과 떨어져 살며, 고립된 상황에서 수해를 경험한 어르신들은 ‘언제든 내가 홀로 남겨질 수 있구나’ 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표정이 없던 할머니들은 최씨가 4번째 봉사를 갔을 즈음에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서서히 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나 구례 주변 지역에서 확산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그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웃음기는 다시 사라졌다. '다시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은 이재민들의 소박한 꿈마저 짓밟고 있었다.
매주 소고기뭇국 나눔 봉사를 하는 장예리씨도 “최악의 악몽은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라며 "정부고 구례군이고 제발 디다(들여다) 봐줬으면..." 하고 말끝을 흐렸다. 구례5일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그도 이번 수해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상점과 옷가지가 비료 냄새 나는 흙탕물에 잠겼지만 주변 상인들에 비하면 자신은 피해가 적은 축이라고 한다. 장씨는 멀리 사는 지인들이 50만원, 100만원씩 보내준 지원금을 모았다. 그리고 당장 끼니 해결이 막막한 이웃들를 위해 소고기를 넣고 뭇국을 끓였다. 수해 직후부터 매주 마을을 돌며 큰 솥에 끓인 소고기뭇국을 냄비에 담아주기를 석달째. 배식받는 데 급급하던 한 주민이 대뜸 "군에서는 찾아오지도 않는데,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할 말을 찾던 장씨는 “구례 따순 사람이요” 하고 말았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을 가까이에서 지킨 최아리 장예리, 두 사람은 재난 대응 체계가 약자를 외면한다고 입을 모았다. 글을 모르거나 눈이 어두운 노인은 문자메시지가 와도 재난 상황을 알 수가 없는데다, 마을 방송은 소리가 크고 웅웅거려 제 때 대피하기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더욱 우울한 건 재난 후에도 약자는 다시 후순위가 된다는 거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읍사무소로 와서 신청하라"거나 "구호물품이 나왔으니 받아가라"고 전화로 알리는 행정처리 탓에 거동조차 불편한 노인들은 차라리 도움 받기를 포기한다. 두 사람은 "재난상황에서 노인, 아이, 여성을 먼저 구하는 건 영화 타이타닉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수마가 할퀴고 간 지 100일 지났지만 마을 곳곳에는 회복되지 않은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담장을 긁으며 걷다가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봐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예년 같으면 마당에 나란히 앉아 수확한 농작물 이야기를 나눴을 농부들은 이제 말을 아낀다. 힘든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이 만나야 치유가 일어나는데, 마음 힘든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한숨만 깊어진다. 거리에서 만난 40대 구례 주민은 “물질적 피해는 상당 부분 회복됐는데, 정신적 상흔이 깊어 심리적으로는 점점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노소를 막론한다. 섬진강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50대 상인은 서시천 둑이 무너지면서 식당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그 충격에 뇌졸중으로 입원해서 아직까지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 겨울 날 생각에 한숨 짓고 있다. 정영이 구례군 여성농민회장은 "수해 직후 후원이 몰리면서 여름에 필요한 구호품이 보급됐지만 지금은 겨울나기가 암담한 상황"이라며 "된장 고추장 같은 식료품은 물론이고 김장도 못해 끼니 걱정도 해야 한다. 침구가 없는 집도 있고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주민들은 근본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새벽부터 나왔는데 1만원도 못 팔았어.”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 인사를 하러 정자 앞 좌판에 가니 손씨가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믹스커피를 우엉차에 털고 휘휘 저어주면서 말이다. 종이컵을 받아 들고 "몸만 고되게 뭐 하러 나오시느냐"고 하니 “그래야 살아진다”고 했다. “여기 나와서 얼굴 보고 음식 먹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살면 돼.”
냉이랑 토란을 좀 사간다고 하니 한사코 돈을 안 받겠다며 냉이를 두 움큼 더 넣어주신다. 공짜로 받을 게 따로 있지, 기회를 엿보다 집히는대로 앞치마에 돈을 찔러 넣고 나왔다. 집에 와보니 검은 봉지에 1,000원짜리 거스름돈이 들어있었다. 손씨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받을 걸 받았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