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다…밥먹다…'일상의 감염'이 방역망을 위협한다

입력
2020.11.1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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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된 전남대 병원, 김장철 손님 끊긴 철원 시장
8월 유행과 달리 '다양한 과녁' 탓에 위험수위 고조
무증상 경증감염 많은 젊은층 확산도 우려 키워

16일 광주 동구 제봉로에 위치한 전남대병원 7병동 1층 입구.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들이 병문안을 온 방문객들에게 출입 통제 사실을 알리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병원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6명이나 잇따라 나오면서 이날 일부 병동이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조치된 터였다. 병원 관계자에게 전화하니 수화기 너머에선 “병원 안과 밖 확산 차단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이 되풀이돼 들려왔다. 코로나19 대응 거점병원인 전남대병원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병원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병원 내 감염'이 이어지고 있는 전남대병원은 이날 코로나19 지표환자인 신경외과 전공의가 근무한 1동(본관) 6층 신경외과 병동과 확진 입원 환자가 나온 11층 감염내과 병동을 자체적으로 동일집단 격리 조치했다. 또 입원 환자 확진자가 나온 9층 호흡기내과병동도 사실상 폐쇄했다. 6층에는 환자 35명, 보호자 33명을 포함해 81명이 격리 중이다. 병원 측은 당초 응급실과 외래 진료 시설에 대한 폐쇄 기간도 당초 16일에서 17일로 하루 더 연장했다. 이날 오후 현재 보호자 1명과 방사선사 1명, 1동 1층 입주업체 직원 2명과 그 지인 1명, 지인의 손주인 초등학생 2명 등 모두 7명이 추가로 확진되는 등 상황이 엄중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같은 날 오후 강원 철원군 동송읍 동송전통시장. 김장철을 맞아 북적여야 할 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지난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외출을 꺼린 탓이다. 일부 점포에선 쌓인 배추와 채소류를 보며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상인은 "확진자가 지역 내 곳곳에서 나오자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지난 여름 물난리로 휴가철 특수가 통째로 사라진 데 이어, 코로나19까지 등장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송읍 대부분 상점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었고, 유동인구가 확연하게 줄자 몇몇 점포는 아예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인구 4만 4,000여명인 철원군에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건 지난 12일부터다. 교장연수에 참가했던 교원과 장애인요양원 확진자 등을 매개로 이날까지 순식간에 26명이 확진됐다. 지난 15일엔 함께 김장을 담근 갈말읍 이웃사촌 7명이 무더기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철원군청 공무원 4명도 확진되면서 이현종 군수와 신인철 부군수마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갈말읍 종합운동장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까지 다시 등장했고, 이날까지 1,080여명이 이곳에서 검사를 받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코로나19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여행, 행사, 모임 증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존 광화문 집회와 같은 대규모 집단감염이 아닌 가족ㆍ지인모임, 직장, 병원, 식당ㆍ헬스클럽, 대학 동아리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도 하룻새 223명(해외유입 30명 포함)으로, 사흘 연속 200명을 상회한 배경이다.

가족이나 소모임을 통한 전파는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 없는 환경을 틈타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전날 고려대 아이스하키 동아리 집단감염에 이어 이날 수원대 미술대학원ㆍ동아리 모임, 경북 청송 가족모임 등 신규 집단감염도 익숙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다 감염이 이뤄졌다. 전남대병원 의료진 감염도 식사를 같이 한 정황이 포착, 직장내 전파로 추정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전파는 전국적으로, 일상 속에서, 다양한 집단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더욱 큰 문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증상ㆍ경증 감염자가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방대본에 따르면 최근 4주간 확진자 중 40대 이하 비율은 49.1%로 그 직전 4주보다 10.8%포인트나 증가했다. 최근 1주만 보면 그 비율은 52.2%까지 늘어난다. 정 본부장은 “무증상이나 경증 확진자가 많은 청장년층도 감염을 확산시킬 확률이 높은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진단검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활동폭이 넓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감염됐는지 모르고, 증상마저 없는 젊은 층 확진자들로 인해 조용한 전파 위험이 커지면서 현재 수준의 사람 간 접촉이 늘어날 경우 대규모 확산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방역당국의 판단이다. 8월 이후 대유행 때에는 '하나의 과녁'인 광복절 집회를 중심으로 방역을 펼쳤지만, 지금은 셀 수 없는 '움직이는 과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 본부장이 “현재 수준에서 사람 간의 접촉을 줄이지 않으면 2주나 4주 후에 (일일 신규 확진자가) 300명에서 400명 가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방역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1.5단계로 격상하는 배경이다.

광주=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철원=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