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전 기상청에서 들어온 재난방송 안내입니다. 오늘 오후 1시를 기해 서울특별시, 양평군, 광주시, 여주시, 화성시, 안성시, 이천시, 용인시, 하남시, 의왕시, 평택시, 오산시, 남양주시, 구리시, 안양시, 성남시, 수원시, 의정부시, 양주시, 고양시, 가평군, 포천시, 과천시, 무안군, 영암군, 해남군, 강진군, 여수시, 진도군, 천안시, 아산시, 청양군, 예산군, 계룡시, 제천시, 음성군, 화천군, 홍천군, 춘천시, 횡성군, 정선군, 영월군, 원주시에 폭염주의보를 폭염경보로 상향 조정하였습니다."
지난해 8월 기상청이 한 방송사 라디오국에 요청한 재난방송 내용이다. 해당 방송사는 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을 중단하고, 진행자가 시, 군 단위 지역명과 재난 상황, 행동요령까지 재난방송 문안을 빠짐없이 읽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부가 요청한 재난방송을 내보내야 한다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송사는 "기상청은 오늘 오후 1시를 기해 서울과 경기 일부, 강원 일부, 충남 일부, 충북 일부, 전남 일부에 폭염주의보를 폭염경보로 상향 조정하였습니다"라고 방송했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로부터 과태료 750만원 처분을 받았다. 2018년 1월 또 다른 방송사는 정규방송 총 25분 중 5분을 재난방송에 할애하기도 했다.
라디오 재난방송에 대한 현행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방송계에서 잇따르고 있는 이유다. 이에 한국방송협회는 지난달 15일 국무조정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라디오 재난방송 기준 합리화 요청서'를 냈다. 자막을 활용하는 TV와 달리 시간 제약을 받으면서 동시에 여러 정보를 전달하기 어려운 라디오라는 매체 특성을 고려한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원화된 재난방송 창구가 없어 일선에서 혼란을 부르는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부처마다 임의적 판단에 의한 재난방송 요구로 재난방송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지거나 오히려 시급성이 덜한 재난방송이 중대한 재난보다 더 자주 방송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 라디오 방송사 관계자는 "25분 방송분량 중 5분을 재난방송에 쓸 경우 방송 프로그램 중 코너 하나가 날아가버린다"며 "복잡한 지역명과 안내사항을 모두 읽어야 하는 진행자의 부담과 청취자들의 피로도도 높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방송협회는 재난의 시급성이나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재난방송의 단계적 송출 기준 마련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재난방송 창구 일원화 △지역 호명 개수 축소 △간결한 문안 제공 등도 내놓았다. 이 같은 내용을 접수한 국무조정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은 주무부처인 방통위와 제도 개선 협의·조정 과정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