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와 '그림자 소녀'... 백악관으로 가는 길은 함께였다

입력
2020.11.10 19:00
샌프란스시스코 화가 괼러, 의류회사와 협업
백인 학교에 첫 입학한 흑인 브리지스 형상화
"시민권을 위해 싸워 온 모든 이들이 길 개척"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이자 흑인 부통령으로 당선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는 검은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해리스 당선인이 검정색 가방을 들고 힘차게 걸어간다. 눈에 띄는 건 흰색 벽에 비친 그림자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해리스가 아닌, 1960년 당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에 살던 여섯 살 흑인 소녀 루비 브리지스다. 미국 IT전문매체 씨넷은 9일(현지시간) 두 세대의 선구자적인 여성 두 명을 한 화면에 담은 이미지가 SNS를 달궜다며 이를 디자인 한 브리아 괼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미지 속 소녀 브리지스는 미국 민권 운동의 상징으로 꼽힌다. 그는 1960년 백인들만 다니던 윌리엄프란츠 초등학교에 등교한 첫 흑인 학생으로 흑백 통합 교육의 상징이었다. 이후 그는 흑인 권익 투쟁에 적극 참여했으며 1999년에 '루비 브리지스 재단'을 만들어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해리스와 브리지스를 하나의 이미지로 담은 건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브리아 괼러다. 그는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랬다"며 "이미지가 확산된 것에 너무 놀랐다"라고 밝혔다. 이 이미지는 괼러와 티셔츠 회사 굿 트러블(Good Trubble)의 소유주가 협력하면서 탄생했다. 이미지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해리스는 혼자 백악관에 입성한 게 아니다.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1600(백악관 주소지)으로 가는 길은 루비 브리지스와 같이 시민권을 위해 수십년 동안 싸워온 이들에 의해 개척됐다"는 것이다.

그림자 이미지도 그냥 디자인 한 게 아니다. 소녀는 독특하게 땋은 머리와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일상을 담아낸 삽화로 유명한 노먼 록웰이 1964년 잡지에 그려 넣은 그림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는 유명한 삽화를 기억하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록웰은 어린 브리지스가 책을 들고 보안요원들에 둘러싸여 학교에 가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에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The Problem We All Live With)'라는 제목을 붙였다.

괼러는 인터뷰에서 "이 디자인은 그들이 성공하길 원하지 않는 이들과 경쟁해 성공을 거둔 두 명의 강력한 여성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두 여성의 디자인은 티셔츠에 이어 인쇄물로 판매되고 있는데, 수익의 상당 부분은 자선 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그는 이어 "굿 트러블과 함께 젊은 여성, 젊은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미소짓게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 이미지 속 주인공인 루비 브리지스(66)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미지를 공유하며 "우리가 미국 역사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미국인들과 함께 한 것에 감사하다. 이 길(해리스의 부통령 당선)의 부분이 된 것에 영광이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괼러는 "루비 브리지스가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라며 "아름다운 역사적 순간의 작은 일부가 된 것에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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