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바이든, 정중동 행보 속 정권 인수 본격화

입력
2020.11.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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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검토팀·코로나TF 등 정권 인수 본격화
이민·동맹복원 등 反트럼프 행정명령 준비
공화당 협조·민주당 화합 등 의회 관계 과제

일요일인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일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매주 찾던 델라웨어주(州) 윌밍턴 자택 인근 성요셉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이 곳에 묻힌 전 부인과 장남, 딸 등의 묘지에 참배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승리 이틀째인 이날 결과나 정책 관련 공식 언급을 내놓진 않았다. 대신 정권 인수 작업에는 점차 속도를 붙여 갔다. 글자 그대로 정중동 행보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에 대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내년 1월 20일 취임 직후부터 '오류'로 판단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을 '행정명령'으로 뒤집겠다는 구상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여당이 될 민주당에선 진보그룹과 온건중도 주류 간 내홍이 시작됐고, 상원 과반 가능성이 높은 공화당을 상대해야 하는 과제도 놓여 있다.

기관검토팀·코로나TF 등 본격 가동

바이든 당선인 측은 9일부터 정권 인수 업무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AP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은 "바이든 당선인이 '기관검토팀(agency review team)'을 이번 주 내에 발족한다"고 보도했다. 기관검토팀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기관 인수 업무를 담당할 참모들로 구성된다. 넘겨받을 업무, 예산ㆍ인력ㆍ규정 등을 검토해 내년 1월 20일 취임식 직후 바이든 행정부가 즉시 가동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최근 며칠 새 연일 10만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 문제 대처를 위해 과학자, 전문가, 전직 관료 등 16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도 9일 발족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오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함께 TF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라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밝혔다.

인수위의 경우 150여명으로 구성했고 곧 인원을 3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윌밍턴에 있던 선거대책본부는 해체하고 워싱턴에서 인수 준비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선인에게 사무 공간·인력·자금 등을 제공하는 연방조달청(GSA)이 바이든 승리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어 곤란을 겪고 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 때문에 정부윤리청(OGE) 협조를 받지 못해 인사 청문 준비 절차도 지연되고 있다.

4년간의 '트럼프 정책' 뒤집기 시동

벼르고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 정책 뒤집기도 구체화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결정했던 파리기후협약에 취임 첫날 재가입하고,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방침도 되돌리겠다는 뜻을 선거운동 기간에 이미 밝혔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던 반(反)이민정책, 차별 문제 해소 조치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민ㆍ환경ㆍ의료ㆍ동성애자 권리ㆍ무역ㆍ감세ㆍ동맹 복원 등을 행정명령 발동 대상으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폐지를 추진해온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 제도(DACAㆍ다카) 복원, 불법이민자 자녀 시민권 취득 지원, 이슬람국가 출신 비자 발급 거부 행정명령 원상 회복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4일 개설된 대통령직인수위 홈페이지에도 코로나19, 경제회복, 인종 간 평등, 기후변화 등 4가지가 핵심과제로 제시됐다.

미 CNN방송은 "민주당이 의회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워지면서 행정명령 실행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017년 취임 첫 날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폐지 행정명령으로 집권에 시동을 걸었다.


공화당 설득에다 민주당 화합도 과제

하지만 민주당과 의회 상황은 권력이양 작업에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일단 상원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날까지 48석을 확보했지만 경쟁 중인 남은 4석이 공화당 텃밭 지역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상원 과반이 유지될 경우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후 임명할 주요 공직자 중 인사청문 대상 1,200여명의 인준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출발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당내 상황도 심상치 않다. 바이든 당선인 취임 전 진보정책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그룹과 온건중도로 가야 한다는 진영 간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 하원 3인자인 짐 클라이번 의원이 NBC 방송에 출연해 "진보그룹의 '경찰예산 삭감' 주장 등 때문에 선거에서 손해를 봤다"고 지적하자, 진보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이날 클라이번 의원 등의 지적에 "무책임하다"고 반발했다.

다만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서로 싸우지 않고 함께 일하는 게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확전을 피하고 있어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민주당 내 갈등이 깊어지고 분화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 초반 힘이 빠질 공산이 크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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