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을 밟아야 했던 '브레이크맨'

입력
2020.11.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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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멕시코 철도원 헤수스 가르시아


모든 움직이는 것은 멈춰야 할 때, 제때 안전하게 멈춘다는 기약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너무 다급해서, 속도의 마력에 넋을 잃어, 일단 달리고 보는 경우도 물론 있다. 영국 발명가 조지 스티븐슨이 1814년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이래, 그 힘과 속도에 매료된 인류(진보)의 욕망이 후자의 경우였다. 열차를 달리게 하는 기술이 안전하게 제동하는 기술보다 먼저 탄생했고 빨리 발전했다. 미국 발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가 원격 조정 다중 에어브레이크 시스템을 발명해 특허를 받은 것은 1869년 4월이었다.

열차의 달리는 힘과 멈추는 힘의 간극을 메운 건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관사가 탄 기관실 제동차량 외 거의 모든 달리는 객차 지붕 위에 앉아 제동해야 할 때에 맞춰 수동으로 마찰레버를 돌렸다. 눈·비와 바람도 끔찍했겠지만, 급제동으로 객차에서 떨어지거나 장애물에 부딪쳐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했다. 힘과 담력 못지않게 책임감을 인정받아야 했던 그 위험한 직종의 일꾼들이 이른바 '브레이크맨(brakeman)'이었다.

멕시코 소노라주 철도원 헤수스 가르시아(Jesus Garcia, 1881.11.13~ 1907.11.7)도 브레이크맨이었다. 17세에 구리광산 잡부로 일을 시작한 그는 철도 선로공을 거쳐 힘든 대신 상대적으로 급여가 많았던 브레이크맨이 됐다. 1907년 11월 7일, 소노라주 북동부의 작은 광산마을 '나코자리(Nacozari)'에 정차한 열차에 불이 났다. 당시 열차에는 다이너마이트가 잔뜩 실려 있었다. 가르시아는 기관실에 뛰어들어 전속력으로 약 6km가량 열차를 후진시켜 마을과 주민들을 구하고 폭발로 숨졌다. 1km만, 몇백 m만 덜 갔어도 그는 살았겠지만, 그는 브레이크맨이었다. 위험에 제동을 걸기 위해 그는 최대한 멀리, 기약없이 달려야 했다.

그를 기려 마을 이름이 '나코자리 데 가르시아'로 바뀌었고, 그의 기일이 멕시코 '철도노동자의 날'이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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