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를 악화시켜 미국을 움직이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대화를 진전시킬 수 없다."
김연철(56) 전 통일부 장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시대를 맞는 북한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태도 변화'라고 일갈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관여를 최소화한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과거와 같은 도발은 전술이 아니라 오판이라는 충고다.
김 전 장관은 "바이든 당선인은 비핵화 문제를 실무협상부터 단계적으로 풀어갈 텐데, 북한이 '도발 카드'를 사용하면 대화 동력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봤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궤도에서 이탈한 북미 비핵화 협상을 다시 안착시키려면 북미 정상의 '브로맨스'에 기댔던 착시부터 걷어내야 한다. "북미 간 진정한 신뢰가 구축되면 바이든 시대에도 제네바 합의 성과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북미·남북관계 '빙하기'였던 2019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남북관계를 이끌었다. 올해 6월 북한이 돌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도발을 감행하자, 남북관계 악화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다음은 김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바이든 당선인은 무엇보다 동맹 회복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반도 이슈에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나
"바이든 외교의 두가지 특징은 동맹과 적극 소통하고 실무 정책 결정 과정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에선 정상적인 정책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상향식, 하향식 얘기를 하는데, 방위비 협상이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실무 합의가 이뤄진 것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러면 중요한 현안이 길을 잃게 된다. (바이든 당선인이) 정책 결정 과정을 회복하겠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돼야 북미 협상이 잘 풀릴 거란 기대가 있었다
"매우 근거없는 얘기다. 미 대선 개표 초반 트럼프가 앞서니까 남북경협주가 올라간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정상간 친서 교환이 일으킨 '착시'다. 트럼프 정부에서는 정책 결정 구조 자체가 붕괴된 상황이었다. 하노이 회담이 대표적이다. 북핵 협상은 굉장한 인내심과 장기적 과정이 필요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정치적 성과로 접근했고 실무진과의 소통도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더라도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은 낮았다."
-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을 선호한 게 아니었나?
"북한도 정상 간 신뢰가 유지됐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 이후 제대로 된 북미 간 실무 접촉이 없었고 2년이라는 시간만 흐르지 않았나. 북한도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대선 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려 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선거 전에 거론된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가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다"
-바이든 당선이 북핵 협상에 낫다고 보는가
"바이든 당선인은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미 간 소통과 전략적 공감대를 이루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민주당(한국)과 민주당(미국)이 같이 집권했을 때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낙관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전했다. 고도화된 북핵 능력을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어려운 협상이다. 북한이 협상 재개의 문턱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로 크게 높인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국내 정치환경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공화당은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바이든 정부에선 의회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바이든 정부는 우선 선거 후유증 극복과 코로나19 대응 등 국내 정치에 집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이든은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성과가 예상되는 의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유럽연합(EU)과의 관계 회복엔 적극적으로 나서고 오바마 정부의 업적이었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도 재가입할 거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의 우선 순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핵 문제 해결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도 더 어려워진다. 이를 인식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해법을 마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든 정부가 북핵 협상을 어떻게 풀어갈 것으로 보나
" 제네바 합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제네바 합의는 30년간의 북핵 협상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을 8년 동안 중단시켰고, 단계적 방식으로 접근한 협상이었다. 이후 9·19 공동선언 등 여러 중요한 합의가 있었지만 8년간 북핵 능력을 중단시킨 성과는 적지 않다.
바이든 정부도 결국 하노이 회담으로 돌아가 협상이 결렬된 지점에서 시작할 것으로 본다. '영변 폐기 대 일부 제재 완화'냐 '영변 플러스 알파냐'를 두고 내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관건은 비핵화 상응 조치를 어떻게 균형적·병행적으로 추진하느냐다. 단계와 단계를 이어가는 동력이 상응 조치다. 북미 간 신뢰가 구축되려면 작은 성과라도 필요하다. 서로 불신하고 성과도 없는데 높은 수준의 합의와 이행을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바이든 시대, 북한의 대미 전략은 어떻게 될까.
"북한은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 자체보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북중동맹을 강화해서 북미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2017년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달라진 현상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시작되면서 중국도 북한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얘기하며 도발 위협 수위를 높일 때 이를 제지한 것도 결국 중국이었다. 북중동맹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 협상에서 미중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은 어떻게 보나?
"단순히 한국의 중재자 역할 만으로 궤도에서 이탈한 비핵화 협상을 다시 안착시키긴 어렵다. 미국도 우리도 북핵 협상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미 양국이 협력하더라도 중국의 협조가 중요하다. 미중 경쟁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협력을 어떻게 분리해 내느냐가 우리의 외교적 과제다."
-북한이 과거처럼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없나?
"당 창건 기념식에 등장한 무기들의 실전 배치를 위해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이를 원치 않기 때문에 북중 동맹을 강화하는 정세와 부딪히고 유엔 제재가 강화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오바마 정부 출범때처럼 전략도발을 한다면 오판이 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1기 밖에 안돼 주어진 시간 동안 집중해야 하는데 북핵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 북한은 늘 벼랑끝 전술 형식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켜 미국을 움직이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제 북한도 달라져야 한다. 바이든 정부에선 북핵 협상에 대한 한미간 전략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두고 남북이 세부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6월 대남 비난 이후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객관적으로 보면 내년 상반기는 긍정적 전망이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극복돼야 인적·물적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든 당선인이 국내 언론 기고문에서 재미(在美) 한인과 북측 간 이산가족 상봉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인도주의적 접근에 열려 있는 모습을 보인 건 고무적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큰 틀과 관계 없이 인도주의적 지원은 추진할 공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독자적 공간 마련을 위해 개별관광 등의 카드도 병행돼야 한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으로 북한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 정부가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북한의 도발로) 국민들의 불신이 굉장히 크다. 남북관계는 양면성을 지닌 만큼 국민들의 합의를 모아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다. 국민들이 신뢰하려면 남북관계도 일시적이라도 성과가 필요하지만 교착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연락사무소 폭파나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서는 북측과 매듭을 짓고 나아가는 게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