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관절 무너지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30~50대에서 주로 발생

입력
2020.11.03 05:00
19면
[전문의에게 듣는다] 김이석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피 안돌아 대퇴골두 조직 붕괴
심한 통증·괴사·골절 발생
음주·스테로이드 사용 등 원인
범위 크면 약물 치료 어려워
인공관절 치환술 성공률 높고
관리 잘하면 반영구적 사용


심장에 제대로 피가 돌지 않으면 가슴 통증과 심근경색이 생긴다. 뼈에도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심한 통증과 괴사, 골절이 발생한다. 특히 허벅지뼈(대퇴골) 윗부분에 당구공처럼 달린 동그란 뼈(대퇴골두)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뼈가 붕괴된다. 이를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라고 한다. 냉장고에 오래 둔 귤이 한쪽 부분부터 물러지면서 파랗게 곰팡이가 피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엉덩이관절 질환 가운데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질환 70%를 차지할 정도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는 처음에는 증상이 없거나 통증이 심하지 않다. 하지만 뼈 괴사가 진행되고 골절이 생기면 심한 통증과 엉덩이관절에 큰 손상을 입힌다. 그러면 걷기 힘들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엉덩이관절 수술 치료 전문가’인 김이석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는 고령이 아닌 30~50대에서 주로 발생한다”며 “최근 인공 엉덩이관절은 관리만 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인공관절 수술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낯선 병인데.

“엉덩이관절은 몸통과 다리를 연결해 걸을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관절이다. 대퇴골두와 소켓에 해당하는 골반골 비구로 이루어져 있다. 대퇴골두는 보행뿐만 아니라 다리 벌리기, 쪼그리기 등 다양한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대퇴골두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대퇴골두 내 골세포가 죽고 뼈를 지지하는 내부 구조가 붕괴되면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생긴다. 지반이 약해져 땅이 꺼지는 싱크홀처럼 관절 연골도 일그러지며 결국 관절염으로 악화된다. 30~50대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기저 질환에 따라 더 젊은 나이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10만명당 28.9명 정도 발생하며,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4배 정도 많다. 매년 1,700~1,800명 정도의 환자가 새로 생긴다.

정확한 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과다한 음주, 부신피질호르몬(스테로이드) 사용, 전신 홍반성 낭창(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 잠수병, 장기이식, 골반 부위 방사선 치료를 받았을 때 등이 발병 원인으로 꼽힌다. 한양대병원을 찾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남성 환자는 40~50대 연령대가 많았고, 음주력이 확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환자에서는 남성보다 비교적 젊은 연령대에 발생했으며 부신피질호르몬이나 자가면역질환과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

“대부분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는다. 사타구니와 엉덩이에서 둔한 통증이 시작된다. 약간 불편한 정도의 통증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통증까지 다양하다. 허리 통증이 생겨 허리 디스크로 오인되기도 한다. 병이 악화하면 눕거나 앉아 있을 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세를 바꾸거나 걸으려고 하면 통증이 심각해진다. 주로 첫 보행 시 통증이 심하다가 몇 분 정도 걸으면 엉덩이관절이 부드러워지거나 통증이 완화된다. 대퇴골두가 함몰되거나, 관절이 부으면 심한 통증으로 보행이 불가능해진다.”

-진단과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X선 촬영 검사로 진단한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면 X선 검사로는 알 수 없는 초기 상태일 때도 진단이 가능하다. 괴사 범위ㆍ위치에 따라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나 병의 악화 정도와 치료법이 결정된다. 괴사 범위가 작으면 증상을 느끼지 못하거나 경미하게 통증을 느끼는데, 진통제로 쉽게 호전된다. 괴사 범위가 크면 약물로 통증을 조절할 수 없고 대개 수술해야 한다.

치료법은 비수술 치료(약물 투여, 물리 치료)와 수술 치료(인공관절 치환술)가 있다. 비수술 치료로는 완전 회복이 어려워 결국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로는 환자 관절을 보존하는 관절 보존술과 괴사된 뼈를 제거하고 인공 엉덩이관절을 삽입하는 인공 엉덩이관절 치환술이 있다. 초기이거나 괴사 범위가 작으면 대퇴골두에 큰 구멍 한 개 혹은 작은 구멍 여러 개를 뚫어 뼈 압력을 줄이고 혈액 순환을 시키는 관절 보존술(중심감압술)을 시행한다. 그러나 치료 효과가 높지 않아, 수술 후 결국 인공 엉덩이관절 치환술을 시행할 때가 많아 적극 추천하지는 않는다.

관절 손상이 심하거나, 대퇴골두가 함몰됐거나, 퇴행성 변화가 있거나, 괴사 범위가 넓고 약물 같은 비수술 치료로 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인공 엉덩이관절 치환술을 해야 한다. 현재 인공 엉덩이관절 치환술은 저명한 의학 학술지 ‘랜싯(Lancet)’에서 ‘세기의 수술’이라고 부를 정도로 성공률이 아주 높고 사회경제적 기여도도 높다. 인공 엉덩이관절의 수명은 강화 폴리에틸렌ㆍ세라믹 같은 신소재 개발과 삽입물 디자인 발전으로 크게 늘었고, 재수술률도 줄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공 엉덩이관절 치환술을 받은 환자의 50~75%가 인공관절을 25년 정도 사용하고 관리만 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부 환자 가운데 검증되지 않은 체외충격파 시술이나 줄기세포 치료 등으로 병을 악화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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