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변호사는 법무법인(로펌)이 아닌 민간 기업 법무팀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다. 사내 변호사는 평상시엔 계약서 검토 등 기업 활동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하고, 회사가 송사에 휘말리면 소송 대리를 맡은 외부 로펌과 협업을 담당한다. 법령이 바뀌는 등 기업 외부 환경에 변화가 생길 때, 예상되는 위험 요소를 찾아내 사전에 문제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지난해 등록 변호사 수가 3만명을 넘어선 국내 법조계에서는 10년차 미만의 젊은 변호사들, 특히 3, 4년차 변호사가 민간 기업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청년변호사들은 양질의 근무 환경을 좇아 이직하는 일이 잦은데, 그들 입장에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나쁘지 않은 사내변호사가 적극적 고려대상이 된 것이다. 소형 로펌에서 5년 간 근무하다 보험회사로 이직한 한 변호사는 “연수원에 있을 땐 송무(소송업무) 위주 교육만 받았고 기업법무는 아예 배우지 않아서 동기들 대부분 사내변호사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수원 동기 20명 중 4명이 사내변호사로 이직해 다닐 정도로 주요 직역이 됐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사내변호사로 눈을 돌리는 청년변호사들이 늘어난 것은 로펌 송무 변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한 몫을 하고 있다.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청년변호사 549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39%(216명)가 ‘일주일에 52~68시간’ 근무한다고 답했고, 그 근로시간 실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3분의 1 이상이 주 5일 근무 기준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것인데, 일요일 근무는 당연하고 빨리 퇴근하면 오후 8~9시, 일이 많을 땐 일주일에 하루 이틀 밤을 새는게 다반사란다.
변호사들은 "다른 직종에 비해 많이 받는 건 맞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선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송무 업무를 계속할 유인 요소가 없다고도 말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사건 수임료는 20년 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낮아졌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래서 연봉을 낮추더라도 9 to 6(9시 출근, 6시 퇴근)를 보장받는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는 선호도가 커졌다. 3년간 대형 로펌에서 일하다 건설회사로 이직한 이모(31) 변호사는 “이직 후 연봉이 30% 이상 줄었지만, 저녁이 있는 삶과 건강을 되찾아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결혼을 앞둔 여성 변호사들이 출산ㆍ육아휴가가 보장되는 기업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자기 전문 분야를 찾기 위해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 경쟁이 치열해지는 법조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법무 현장의 최일선인 기업에서 전문적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형 로펌에서 2년간 일하다 사내변호사로 이직한 박모(31) 변호사는 “저연차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내게 제일 잘 맞는 일이 뭔지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이직했다”고 밝혔다. 그는 로펌에서 주로 금융 사건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금융회사로 이직했는데 “금융 법령을 깊게 공부하는 등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 구상일 뿐이지만 이 분야가 잘 맞으면 금융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에 취직하거나 금융위원회 같은 기관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이 법률자문을 외부 로펌에 맡기기보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기면서 사내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이직이 늘어난 요인이다. 즉, 사내변호사로의 이직은 공급과 수요가 맞물리며 생겨난 현상이란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해외 진출로 기업의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점차 복잡해지는 법무 업무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직접 고용할 필요성이 생겼다. 특히 1999년 삼성그룹이 공채 1기 변호사를 뽑았던 게 사내변호사 채용 증가의 시발점이 됐다. 최근에는 준법 경영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사내변호사 수요가 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펌과의 법률 자문 계약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사내 변호사를 고용하는 측면도 있다. 중형 로펌에서 2년간 일했던 최모(33) 변호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자문 의뢰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며 "어떤 회사는 사내변호사를 채용한 후 자문 의뢰를 기존의 70% 가까이 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로펌 매출이 주는 게 보이니 자연스레 사내변호사 이직을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사내변호사가 청년변호사들 사이에선 유망 직종으로 인기를 끌면서 로스쿨 재학 때부터 사내변호사를 목표로 잡는 경우도 늘었다. 서울 지역 로스쿨의 한 재학생은 "작은 로펌에 가느니 큰 회사 사내변호사가 낫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전했다. 다만 “사내변호사도 송무 업무에 대한 기본 이해는 갖춰야 하고, 사내변호사는 대부분 경력직으로 뽑기 때문에 다들 로펌을 거쳐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려고 한다”고 했다.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도 사내변호사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방교육청의 변호사 수요가 늘었는데, 교육분쟁이 증가하면서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조정 역할을 하거나 학교의 소송을 대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서다. 일부 지자체는 감사, 언론 대응, 옴부즈맨(행정기관 공무원의 권력남용을 조사ㆍ감시하는 행정감찰관) 등 민간 기업보다 분야를 세분화해 변호사들을 뽑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