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을 뒤늦게 공개 비난했다. 남북관계 컨트롤타워인 서 실장을 겨냥한 막말 비난은 이례적이다. 미국 대선이 코앞에 다가오자 한미 밀착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동서남북도 모르고 돌아치다가는 한치의 앞길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제목의 기사에서 "남조선의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이란 자가 비밀리에 미국을 행각하여 구접스럽게(몹시 지저분하고 더러운) 놀아댔다"며 서 실장 비난에 나섰다. 서 실장이 이달 13~16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등을 만나 한미관계 현안을 논의한 것을 뒤늦게 비판한 것이다.
북한은 서 실장이 미국 방문 당시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미국 등 주변국들과 서로 의논하고 협의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언급한 부분을 콕 집어 "얼빠진 나발"이라며 맹비난했다. 북한은 서 실장의 발언이 "신성한 남북관계를 국제관계의 종속물로 격하시킨 망언"이라면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남조선 당국의 공공연한 부정이고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러면서 남북 관계는 미국과 관계 없이 '우리 민족끼리 풀어야 할 문제'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서 실장에게도 "한때 운전자론이요, 조선반도 운명의 주인은 남과 북이라던 객기는 온데간데 없고 상전(미국)의 버림을 받을까봐 굽신거리는 모양새는 눈 뜨고 봐주기 민망스럽다"며 "오죽하면 뼛속까지 친미의식에 찌들어 있는 '미국산 삽살개'라는 야유가 울려 나왔겠느냐"고 막말을 퍼부었다.
북한이 선전 매체가 아닌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남 비난에 나선 것은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태 이후 4개월여 만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이끌어온 서 실장에 대한 막말 비난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한미간 대북 정책 공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메시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특별히 언급할 사항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북한이 정책 담당자의 필명으로 대남 비난을 재개한 것이 아니라, 조선중앙통신에 '리경주'라는 개인 필명으로 쓴 글이어서 공개 반응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북한이 6월 대남공세 당시처럼 대대적으로 우리 정부를 향한 비난 재개에 나설지 여부를 지켜보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