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10대에 '범죄 핸들' 쥐여준 '비대면 공유차 대여'

입력
2020.11.17 04:30
8면
[거리의 흉기, 10대 렌터카]
대여 신청·인계·반납까지 '비대면'
명의대여자, 사고 때 배상 덤터기
소년범은 사기·절도에도 솜방망이

김모(27)씨는 신용카드 연체이자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반가운 게시물을 발견했다. 차량공유 애플리케이션(앱) 아이디를 빌려주면 소액대출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명의대여만으로 돈이 된다’는 사실에 혹한 김씨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게시글을 올린 상대는 몇 가지만 따라 하면 돈을 보내준다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양모(37)씨 등 성인 4명도 차량공유 서비스에 회원가입을 한 뒤 글을 올린 상대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겼다. 그러나 글을 올린 상대는 10대 청소년들로,김씨 등은 이들에게 속아넘어 간 것이었다.

이들이 10대의 손에 핸들을 쥐어주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쏠쏠한 용돈을 기대했던 김씨 등은 그러나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명의를 빌린 10대들이 차량을 반납하지 않아 누적된 주행요금과 연장대여료, 보험료 그리고 운전이 미숙한 10대가 무면허 운전으로 사고를 내 발생한 차량수리비까지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1년 넘게 걸려오는 경찰의 출석요구와 지난한 수사ㆍ재판 과정은 덤이었다.

이처럼 성인 5명으로부터 차례로 차량을 빌린 정모(18)군 등 10대 3명은 지난해 10~11월 도로 위를 마음껏 누볐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

무면허 10대 '비대면' 악용

16일 경찰과 차량공유 업계에 따르면, 운전면허가 없는 10대들은 공유차 대여 과정이 모두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점을 노려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차량 대여 서비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차량공유 업계의 성장을 이끄는 일등공신이 됐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차량 대여계약 체결에서 운행과 반납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돼 대면접촉을 기피하는 현재 분위기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누적회원수 600만명을 넘어선 업계 1위 쏘카의 구독(정기 대여) 서비스 이용자는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 3월 15만명 정도였자만, 9월에는 30만명으로 두배나 늘었다. 업계 2위인 그린카도 올해 6월 기준 신규회원이 지난해보다 35.5% 늘었다.

그러나 ‘비대면의 허점’은 렌터가를 이용하려는 10대의 범죄에 악용됐다. SNS로 명의를 가로채 차를 몰았던 정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종종 알선자를 통해 돈이 오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직접 만날 필요도 없다. 알선자는 명의대여자에게 10만원 가량을 받고 운전이 가능한 상태의 회원 아이디를 활용해 10대에게 운전대를 넘겨준다. 송금은 카카오뱅크로 받고 앱에 내장된 스마트키 버튼으로 문을 열어주면 그만이다.

공유차량 업체의 가입 조건은 만 21세 이상, 운전면허 취득 1년 이상으로 제한돼 있지만 가입자와 실제 운전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10대들의 명의도용과 무면허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해 운전자 연령이 18세 이하인 무면허 사고는 지난해에만 689건에 달했다. 사망 사고는 해마다 20건 정도 발생하고 있다.

명의 빌려줬다가 범죄자로 전락

명의를 빌려준 김씨 등은 청소년을 ‘도로 위 시한폭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방조범’인 동시에 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대부분 “300만원 상당의 포인트나 현금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명의를 빌려줬지만, 돌아온 건 수백만원의 경제적 피해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SNS에 올라온 ‘불법 대출광고’를 통해 마수에 걸려들었다. 이들은 차량공유 앱을 설치하고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로 본인인증을 거쳐 회원가입을 마쳤다. 이후 결제카드를 등록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공유차량을 세워둔 뒤 앱으로 차량 문을 제어하는 스마트키 기능을 이용해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실제로 명의대여자가 돈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차량이 제때 반납되지 않거나 사고가 발생해도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은 운전대를 잡은 10대들과 연락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게시글을 올린 SNS 아이디가 삭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기에 경찰에 신고조차 못한다. 명의를 빌려 쓴 10대가 사고를 내거나 차량이 파손돼도 손해배상책임은 모두 명의대여자 몫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치를 대가도 만만치 않다. 스스로 이용할 의사가 없으면서 업체를 속여 차량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점이나 제3자에게 다시 차량을 대여해준 사실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다. 쏘카와 그린카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이 같은 명의도용 사례 70건을 발견해 수사기관에 넘겼다.

도로 질주하는 10대들 처벌은?

문제는 차량을 빌린 10대들이 단순히 운전대를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끔찍한 사고를 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세 이하 무면허 사고로 최근 3년간 해마다 22~28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5월 길에서 주운 신분증으로 공유차를 빌려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A군은 차량을 회수하러 현장에 나간 업체 직원 B씨를 향해 급발진했다. B씨가 운전석에 앉은 미성년자를 발견하고 하차 요구를 하자 후진하려던 A군이 당황해 액셀을 밟은 것이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사망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법정에 선 10대들은 소년범이라는 특수성이 감안돼 성인들보다 대체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들에겐 컴퓨터 사용 사기죄와 도로교통법상 무면허 운전, 절도 및 재물손괴ㆍ권리행사방해죄 등의 혐의가 적용된다. 교통사고처리 전문 경찰 관계자는 “10대 무면허 운전은 단순한 소년사건이 아니라 사기와 절도까지 가담된 무거운 범죄”라며 ”소년범죄라고 결코 봐주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김청환 기자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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