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더기' 수사지휘권 발동을 곧장 수용했지만 법무부와 대검찰청 사이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장관의 빈번한 지휘권 발동이 검찰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조만간 국정감사장에 서는 윤 총장이 작심 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추 장관이 19일 라임 로비 의혹, 윤 총장 가족 및 주변 의혹 등 5개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대검은 단 30분만에 입장을 밝혔다. 앞서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 대해 추 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했을 때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 장고를 거듭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당시 윤 총장은 오랜 논의 끝에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성적 처분'이라며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수용했다.
내용도 길지 않았다. '금일 법무부 조치에 의해 총장은 더 이상 라임사건의 수사를 지휘할 수 없게 되었음' '수사팀은 검찰의 책무를 엄중히 인식하고, 대규모펀드사기를 저지른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 모두를 철저히 단죄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바람'이라는 단 두 줄이었다. 지휘권 발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을 설명하고, 일선 검사들을 믿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가족 등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입장문에 넣지 않았다. "총장은 지금까지도 가족 등 사건에 대해 일체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대검 측은 설명했다.
입장문의 문구는 윤 총장이 직접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을 불러 간략하게 의논을 하긴 했지만 회의는 길지 않았다고 한다. 입장문을 전달한 뒤 윤 총장은 별도 회의 없이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큰 파열음 없이 일단락된 것은 ‘수사가 우선’이라는 윤 총장의 의지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일단 급한 것은 수사이고, 누가 수사를 맡든 여야 가리지 말고 철저하게 수사할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라임 사태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가 막중한 만큼 실속없는 갈등으로 시간을 끌 상황이 아니라는 게 윤 총장의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취한 것과 달리 윤 총장은 장관의 빈번한 지휘권 발동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추기관으로서 중립성과 독립성이 생명인 검찰이 특정 정당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다. 윤 총장의 이 같은 신념을 아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총장이 오는 22일 대검 상대 국감에서 그 동안 담아뒀던 발언들을 쏟아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정부가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방향으로 검찰 인사를 내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도 언급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