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 닿을 말을 찾는 ‘오선지 위의 구도자’

입력
2020.10.18 14:00
20면

편집자주

‘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이진욱 [인명] 작곡가. 관객. 음악이 말처럼 말이 음악처럼 들리는 사람.

이진욱은 독특한 사람이다. 피아니스트이지만 소리꾼을 흠모한다.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문묘제례악에 빠져 있다. 뮤지컬 작곡가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극단 골목길의 연극이다. 그는 음악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늘 배우의 말을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대본 리딩을 지켜보며 배우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그 배우의 음색, 억양, 리듬, 높낮이를 반복해서 들으며 자신의 곡을 다듬어 나간다. 그렇게 탄생한 곡은 그 배우의 몸과 마음을 닮아 있다.

우리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연극 ‘보도지침’ 등 여러 작업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도를 많이 했다. 긴 독백 자체를 뮤지컬 넘버로 만들어 보고, 일상과 자연의 사운드를 배치해서 멜로디로 표현해 보고, 중세 종교음악에 무굿의 구음을 섞어 보고, 웃음과 울음과 숨소리만으로 노래 가사를 써 보기도 했다. 파격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음악에 가까운 말을 꿈꿨고, 이진욱은 좀 더 말에 가까운 음악을 꿈꿨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인지 음악인지 모를 어떤 것들을 함께 꿈꾸며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피아노를 연습하는데 너무 못 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어요. 답답한 마음에 피아노를 하나하나 뜯어봤어요. 내부의 구조가 정말 복잡하게 생겼더라고요.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날 뿐인 악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의 멜로디를 내기 위해서 피아노의 안쪽에서는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죠.”

“피아노란 어떤 악기입니까?” 질문했을 때, 그가 들려준 얘기였다. 머릿속 해머가 뇌세포의 현들을 쾅쾅 때리는 느낌이었다. 단순함이 모여 복잡함이 되고, 그 복잡함의 끝은 다시 단순함이 된다는 것. 하나의 단순함을 위해 우리는 끝없이 복잡해져야 한다는 것. 그는 피아노 얘기를 했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이 복잡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잠언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음악 얘기를 했다. 클래식은 왜 들을 때마다 변함없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지, 재즈는 왜 그토록 자유로우면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지, 말에 멜로디가 실리면 왜 마음이 움직이는지, 왜 현악기는 가슴을 울리고 관악기는 영혼을 울리는 것 같은지, 왜 음악이 흐르는 순간은 아무 말을 안 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지. 음악 얘긴지 인생 얘긴지 모를 말을 취기 삼아 던지면, 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답변인지 물음인지 모를 그 말이 왜 이렇게 위안이 되었는지. 난 그 변함없는 답을 듣기 위해 쉼 없이 연락해서 그를 괴롭힌 것 같다. 그게 참 미안해서 어느 날은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그의 얘기만을 계속 들었다. 오랜만에 취한다며 온갖 얘기를 쏟아내던 그는, 마지막 한 잔을 마시며 이런 얘기를 했다.

“오랜 옛날에, 세상을 알 수 없어서 두려웠던 사람들은, 세상의 답을 알려줄 저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대요.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죠. 그곳까지 닿을 소리를 위해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음을 찾으려고 노력했대요. 아마도 그게 음악인 것 같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왜 그렇게 말과 음악 사이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찾으려고 했는지.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 두 개의 언어를 오가는 그가 오래오래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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