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법에 명시하고 장병들을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조직 특성을 악용해 군이 장병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원천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상관 명령의 정당성을 가를 기준을 ‘하급자의 존엄성, 분별력’에 둔다는 방침이라, 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4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군인복무기본정책서(2018~2022ㆍ이하 정책서)’에 따르면, 군은 내년까지 관련 법령에 ‘상급자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책서는 2017년 시행된 군인복무기본법에 따라 5년 단위로 수립해야 하는 ‘군인복무에 관한 기본정책’의 방향, 연도별 추진 계획, 기본 지침 등을 다룬 문서다. 그간 군이 이 문서를 공개한 적은 없다.
국방부는 법률화를 검토 중인 ‘부당 명령’의 범위를 △사적 지시 △위법 행위를 요구하는 명령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해치는 명령 등으로 규정했다. 검토 후 필요 시 이르면 내년까지 법률화를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하급자가 '분별력과 준법 의식'을 발휘해 자신이 받은 명령의 정당성을 따질 수 있게 각 명령 사례를 분석하고, 관련한 장병 교육도 이르면 올해부터 내년까지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간 ‘국방개혁 2.0’이 다룬 ‘부당 지시’의 범위는 주로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명령 △사적 명령 등에 국한됐다. 국군 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정치개입,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전 대장의 갑질 사건과 같은 일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구성된 적폐청산위원회는 2017년 9월 첫 권고안으로 ‘군 상급자의 정치 관여 지시 거부 의무화’를 강조했다.
최근 논의에선 여기에 ‘하급자의 인권을 해치는 명령’까지 거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부당 명령’의 검토 범위가 다소 확대된 셈이다. 문제는 거부 가능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열려 있거나, 각 상황 판단을 하급자의 ‘분별력’에 맡겨 놓을 경우 현장에서 혼란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급자가 발휘한 ‘분별력’이 정당했는지 여부를 매번 군사법원에 가서 따질 영역으로 남겨 놓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규정상 직무 범위에는 해당하지만 ‘하급자는 인권 침해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명령’ 혹은 ‘특정 정당 소속 정치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여지가 있는 행정 지시’가 부당 명령인지 아닌지를 일일이 따져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김병기 의원은 “군의 윤리 의식을 높인다는 제도 도입의 취지는 매우 바람직하나, 거부할 수 있는 명령의 범위가 모호하면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며 “분별 기준 정립과 교육 등이 보다 신중한 검토 속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