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 김모씨는 부동산 규제에도 집값이 잡힐 조짐이 없자, 이제라도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좀처럼 신축 아파트 청약 기회가 나오지 않아 조바심이 커졌다. 김씨는 “중개소에 물어보니 올해 청약은 사실상 끝났다고 하더라”며 “대출을 받아 구축 아파트라도 매입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거래 절벽'에 이어 서울의 아파트 ‘공급 절벽’도 장기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분양 성수기인데도 6주째 물량이 자취를 감췄고, 연내 확정된 대단지 청약도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7월 말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 청약이 그 이전에 많이 이뤄졌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신규 아파트 공급이 내년에도 크게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3일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10월 중 주택 청약이 예정된 곳은 경기 고양시 ‘대곡역 롯데캐슬 엘클라씨’를 비롯해 전국에 3곳 뿐이다. 서울엔 예정 물량이 아예 '0'인데, 9월 양천구에 ‘신목동 파라곤’(84가구)를 끝으로 한달 이상 청약이 씨가 마른 상태다.
연말까지 범위를 넓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부동산114 집계를 보면, 서울에서 연내 분양이 예정된 곳은 '힐스테이트 고덕', '이문1구역 래미안' '역촌1구역 동부센트레빌' 등이 꼽힌다.
하지만 이 곳들 역시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문1구역 래미안은 내년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고, 힐스테이트 고덕은 연내 분양이 목표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 동부센트리빌은 다음달이 목표이긴 하나, 일정이 지연되는 분위기다.
서울 서초구의 ‘서초자이르네’와 강동구 ‘고덕 아르테스 미소지움’ 정도가 이달 중 청약에 돌입할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일반 분양은 각각 35가구, 37가구에 불과하다.
시장에선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몰고 온 한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 18개구 309개동과 경기 일부에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예고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분양을 서두르다보니, 8월 이후 물량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조합원 입장에선 분양가가 낮아지니 불리하고, 일반 청약자의 전매 제한도 크게 늘어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완료된 서울의 아파트 분양은 총 3만4,071가구로 2019년(2만7,659가구)과 2018년(2만5,146가구)에 비해 크게 늘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후에는 조합이나 시공사 입장에서 굳이 분양을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는 점도 청약 가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관심을 모았던 1만2,000가구 규모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는 분양가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며 분양일정이 계속 지연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갈등으로 정비사업 단지에선 후분양을 택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의 공급 절벽이 자칫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임일해 직방 매니저는 "정비사업 단지의 경우, 시공사는 분양을 예정대로 하려고 하지만 조합 내 갈등이 벌어져 지연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