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유통기한 지난 명령일 뿐…

입력
2020.10.14 13:00
19면
<13> 안보의식 없는 청년층? 
밀레니얼 대북관 기성 세대와 크게 달라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은 분리해서 봐야
정부는 지나친 확신에 국민 설득은 뒷전
"평화 분위기 조성돼야 통일 논의도 가능"

편집자주

이슈와 화젯거리를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자주 핏대를 세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견 표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의 시각을 담아 한국 사회를 ‘언박싱’ 해보겠습니다. 밀레니얼의 솔직한 체감지수를 느껴 보세요.

철저한 반공 분위기 속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엄숙히 암기해온 기성 세대는 대체로 통일을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2030세대의 경우 마음 속에 '각자도생’, ‘생존주의’, ‘국가를 위한 희생 거부’ 등의 가치관이 자리잡으면서 기성 세대와는 다른 통일관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대구과학대 국방안보연구소가 발행한 '2030세대의 통일관과 안보의식' 논문을 보면 2030세대의 안보 의식에 대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 일이 없다’라는 막연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맹신과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2030세대도 전쟁 위험과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느낍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부터 2010년 천안함 폭침, 2018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양상도, 의미도 제각기 다른 사건들을 겪어왔죠. 가장 최근인 지난달 23일에는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의 피격 사망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피격 사건의 과정과 결말 역시 우리 분단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언젠가는 남북이 통일될 것이란 걸 전제로 한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 밀레니얼이 생각하는 북한은 어떤 모습이고,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요. 진보와 보수에 따라 양분된 대북정책과 거대 담론 위주의 통일교육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밀레니얼 세대 6명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봤습니다.

북한, 볼 수 없고 갈 수도 없는 땅

티나: 어느 언론사에서 최근 실미도 50주년에 대한 기획기사를 연재했어. 해당 부대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 반공 시대를 안 살아봐서 그런가. 북한은 나에게 관념으로만 존재하고 실존적 공포로는 안 느껴졌는데 말이야. 이번 피격사건에도 '새삼 위협적'이라고 느꼈어.

펭수야 사랑해(펭사): 중국 단둥시에 갔을 때 압록강 너머로 신의주를 어렴풋이 본 적이 있었어. 나무도 없고 허허벌판에 아직 석탄 발전을 하는 모습이었어. 경제적 격차가 크게 느껴져서 그런지 심리적으로도 멀게 느껴졌어.

줌으로 공부함(줌공):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분리해서 봤을 때 우선 북한에 대한 심리적 거리는 확실히 멀게 느껴져. 그 어떤 나라보다 통제돼 있어서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다 보니 그런 것 같아.

분당동 갈치발(분갈): 맞아. 지척에 있는데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외국보다 더 먼 느낌이잖아. 같은 민족이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그거 말고는 아무 공통점이 안 느껴져. 직접 사람을 면대면으로 못 만나서 그런가.

귀한곳에 누추한분(귀누): 북한의 인권 문제가 심각해서 도와야 한다고는 생각해. 그런데 나는 안보적 위협이 무척 가깝게 다가와. 아버지가 군인이라 그런지, 연평도 사건 때도 그렇고 북한은 그 어떤 타국보다 더 적대적인 곳이야. 북한이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멀지 않게 느껴지지만, 국가라고 생각하면 멀어지는 느낌이야.

연평도 갈등부터 남북정상회담까지

펭사: 보통 영화 보면서 안 우는데 유일하게 '연평해전' 보고는 울었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 평화 분위기는 있었지만 북한에서 먼저 평화를 깬 경우가 많았잖아.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최근 공무원 피격 사건처럼. 솔직히 평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북한이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감정 기복이 심한 아이처럼 너무 제멋대로야. 그래서 난 통일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야.

줌공: 나는 무조건적인 반감은 들지 않아. 물론 이번 피격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 등이 터지면 반감은 생기지만, 일순간의 감정이야. 전반적으로 우리하고 전선을 대치하고 있을 뿐, 북한을 악마화하는 건 공감하기 힘들어.

양꼬치엔 닭꼬치(양닭): 평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싶으면 그걸 깨는 사건이 일어나니까 그럴 때는 정말 안타깝지.

귀누: 김정은 위원장이 독재자, 인권유린 가해자라는 게 확실하고 그 피해가 우리 국민에게 가해지는 게 확실하잖아. 오히려 쉽게 용서하는 상황이 더 이해가 안 돼. 북한 사람들과는 별개로 김정은이란 인물에겐 확실히 부정적이야. 김 위원장이 미안하다고 하면 우리가 감사해야 하나.

양닭: 군대에서도 현재의 적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라고 배웠어. 북한 주민이 아니라고 가르치잖아. 완벽히 구분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차이를 둘 필요가 있어 보여.

티나: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전면전보다 평화를 우선시하는 게 문제인가. 이럴수록 종전선언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 아닐까. 내 주변 사람들은 과거 트라우마 때문인지 우리도 맞대응하자는 정치권의 말 한마디에 정말 불안해해. 국경 지대의 주민들에게도 실존적 공포로 다가올 거고.

분갈: 무력 대응이 최후의 수단인 건 맞지만 국제사회에 제재를 요청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

귀누: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경제를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어. 방향은 그럴듯하지만, 자꾸 북한에게 져준다는 비난이 나오잖아. 왜 이렇게까지 북한 눈치를 봐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

티나: 그런데 나는 포용적 대북 정책이 지는 건 아니라고 봐. 국가간 관계에선 주면 손해, 뺏어오면 이익이라고 단순하게 프레임을 짜는 건 잘못된 것 같아.

줌공: 애초에 남을 신경 안 쓰고 상식선에서 행동하지 않는 정권을 정상범위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은 '을'의 노력으로 비칠 수밖에 없어. 그런 국가를 상대로 우리도 '갑'이 돼보자고 할 게 아니라면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줄 필요도 있어.

분갈: 계속 연락하고 물밑 작업을 해야 되는 건 맞는데 국민 정서도 생각해달라는 거지. 여권은 지금 자신이 옳다는 도덕적 확신이 지나쳐서 여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아.

양닭: 한편으론 북한 문제는 단편적 감정에 휘둘리고 정쟁 도구로 매번 사용되다 보니 평화를 아무리 외쳐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해. 회의감만 더 깊어지는 느낌이야.

귀누: 북한에 대한 정의부터 통일돼야 해. 괴뢰국인지, 언젠가 통일을 해야 하는 분단국가인지, 아니면 완전 타국으로 봐야 하는지. 이렇게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현실성 있고 체계적인 정책 집행이 가능하겠어.


북한 문화는 금기시하면서 통일은 무조건?

귀누: '대홍단 왕감자', 리설주가 부른 '병사의 발자욱' 등이 유행했을 때 휴전 상황에서 북한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도 되느냐는 댓글이 많았어. 최근 북한 문학 연구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예전엔 북한 책을 한국에 들여오려다 전부 압수당했대.

분갈: 우리 체계가 위협받을까 봐 북한 문화를 규제한다고 하는데, 우리 국민이 선동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불성설이지.

티나 : 오해 살까 봐 거의 금기시된 단어인 '인민'도 한때 '국민'보다 더 널리 쓰인 단어였대. 1948년 제헌 헌법 초안에도 '인민'을 썼다던데. 국민, 시민과는 또 다른 의미의 학술적 단어인데 사회 분위기 때문에 못 쓰는 것 같아 안타까워.

줌공: 맞아. 예전에 홍대 술집이 인공기를 건 북한 인테리어를 했다는 것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잖아. 국보법은 특정 사상을 제한시켜서 우리 사회를 깨끗한 사상적 무균실로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봐. 하지만 그 자체가 대한민국이 표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단순히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법 사유가 돼서는 안 돼. 그 점이 우리와 북한의 다른 점이잖아. 당시 홍대 술집을 두고 한 새터민은 '그런 술집을 운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다'라고 말했는데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해.

양닭: 그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문화를 접하는 것인데, 이거는 수용하고 저거는 수용 안 하는 ‘정도’를 정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펭사: 국보법이 1948년에 만들어진 거잖아. 그때 사회상과는 맞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 아울려. 북한에 대한 관점을 개인마다 자유롭게 수립해갈 수 있어야 진짜 자유민주주의잖아. 술집 같은 경우도 사장님이 손님에게 사상을 강요한 게 아닌데 왜 비판할까.

분갈: 이석기 내란죄도 마찬가지야. 통진당이 다시 선거에 나오면 국민들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사상적으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 같아.

귀누: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을 걸어놓은 건 좋아 보이진 않아. 우리나라에는 김 위원장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이 실제로 있잖아. 그럼에도 법으로 규제할 필요는 없다는 데에는 동의해.

양닭: 최근 통일부가 2030 세대를 겨냥한 통일교육사업에 박차를 가한다고 발표했어. 그런데 이런 행사나 사업들이 너무 이벤트 성격이 강하고 실질적으로 의식 개선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

티나: 대북정책 관리하는 부서 이름이 '통일부'잖아.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대북과 통일 정책이 구분돼있지 않고 혼재돼 있어. 통일을 전제로 하고 대북 정책을 집행하는 건가.

귀누: 통일교육이 아니라 '평화교육'이 맞다고 생각해. 통일은 좋지만 꼭 통일로 미래를 제한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평화가 통일보다 당위성이 더 크게 느껴지고 보편적이지. 그리고 통일교육은 강요의 측면이 크다고 느껴져. 평화를 위해 다양성을 포용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가르치고, 북한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풀어가는 과정이 돼야 해.

줌공: 평화교육은 통일 말고도 다양한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을 가르칠 수 있지.

분갈: 하지만 공교육부터 통일교육을 그만두면 유사시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 대한 권리 자체를 주장할 명분이 없어질 것 같아. 우리의 이익을 우리 손으로 포기하는 건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줌공: 우리가 북한을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는 근거는 없으니 평화교육이 맞다고 생각해. 구국 신장의 목적으로 교육하는 게 아니라면.

펭사: 정부가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게 통일이라면, 통일 UCC(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 만들기 등의 단편적인 행사로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건 너무 날로 먹으려는 태도인 것 같아. 새터민 특강 등의 이벤트 교육은 그날 하루만 하고 끝나는 거잖아. 사회주의나 그들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게 필요해.

양닭: 그래.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교육으로 변화했으면 좋겠어. 무조건적인 강요는 오히려 심리적 거리감만 심화시키니까.

원하는 통일상? 진짜 원하는지부터 물어봐야

귀누: 중국과 대만의 상황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뿌리와 언어, 문화는 비슷하지만 체제의 이질성을 느끼는 것처럼. 그런데 중국과 대만 보고 통일하라곤 안 하잖아. 우리도 통일하라는 데엔 감정적 이유만 있지 그럴듯한 이유는 부족한 것 같아.

양닭: 그런데 우리는 강제로 찢어진 측면이 강하잖아. 중국과 대만은 우리의 분단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 예전에는 북한 내부에서 혁명 같은 게 일어나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는데 새터민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부에서 체제 전복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

줌공: 내가 생각하는 통일의 마지노선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 정상회담이었다고 봐. 시간이 갈수록 남북간 이질성은 강해지고 국민들 역시 분단상황에 무뎌질 텐데, 한민족이라는 당위성만 가지고 통일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거야. 서로를 인정하면서 교역하고 왕래하며 간접적 경제효과를 얻어가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양닭: 그러다가 자연스레 통일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학계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는 통일 프로세스이던데.

분갈: 경제적 논리로 봤을 때는 통일은 돼야 한다고 봐. 시장도 확 넓어질 거고 경제성장을 위한 돌파구가 될 것 같아. 물론 남한의 경제적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줌공: 하지만 통일로 한정하지 않고 평화로 바꿔도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얻어지는 거야. 지킬 걸 다 지켜가면서 평화를 얻을 수는 없어. 대의적 목표를 위해선 굽히는 모양새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너머를 바라볼 필요가 있어.

양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양보가 미덕이라고 하잖아. 굽히는 모양새로 보이는 그런 노력들이 길게 볼 때는 통일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시도로 볼 수는 없는 걸까.

귀누: 글쎄. 국가간 관계에서 양보라는 말은 이상해. 실질적인 인명피해도 있고 경제적 피해도 있는데 그걸 양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갈: 퍼주기도 좋고 다 좋은데, 정부가 국민들을 달래거나 설득하려는 제스처가 전혀 없어서 괘씸해.

귀누: 정부 노선과 국민들 감정이 유리된 것부터 해결해야 할 거야. 국민들에게 진상을 제대로 설명한 다음에야, 어떤 정책이든 추진하는 게 맞겠지.

정리=장채원 인턴기자

참여=김단비, 노지운, 왕나경, 이인서, 장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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