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이 돌아간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는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이번 수상 기회를 놓친 데 대해 “받을 학자가 받았고, 난 기대도 안 했다”며 웃음 지었다.
7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지명한 직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단장은 “노벨상을 계기로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학자들뿐 아니라 기업들도 많이 활용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우드나 교수는 김 단장과 8년여 전부터 유전자 가위 기술 특허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온 과학자다. 이에 대해 김 단장은 “경쟁자라도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건 기쁜 일”이라며 “많은 이들이 노력해서 이 분야를 발전시켰고, 두 명이 대표로 상을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노벨상이 돌아간 ‘크리스퍼(CRISPR)-카스(Cas)9’ 기술은 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분류된다. 이 기술은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마치 가위처럼 자유롭게 잘라낼 수 있어 유전자 가위라고 불린다. 이번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기존 1, 2세대보다 더 정확한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카스9의 원천기술을 개발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김 단장은 수상자들이 세균 세포에서 확립한 원천기술을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 세포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확장시켰고, 2012년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다우드나 교수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과 미국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공동연구진(브로드연구소) 역시 크리스퍼-카스9 특허를 출원했다.
이후 8년 간 경쟁 끝에 올해 김 단장의 특허를 마지막으로 결국 세 연구진의 특허가 모두 미국에 등록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두 연구진 사이엔 법적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단장은 “우리 특허가 미국 연구진들의 특허에 저촉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놓고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다우드나 교수 연구진과 향후 있을 지 모를 특허 분쟁에 대해선 “노벨상과 법리적 다툼이 관련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는 말을 아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 세계 수많은 연구진이 새로운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연구에 앞다퉈 활용하고 있다. 김 단장은 앞으로 유전자 가위가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대표적인 분야로 장기 이식을 꼽았다. “돼지 유전자를 이 기술로 편집해 사람에게 이식이 가능한 장기를 생산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수상에서 빠진 건 전혀 아쉽지 않다. 앞으로 유전자 가위 기술이 응용되고 확장될수록 이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더 배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김 단장은 내다봤다.
한편 김 단장은 정부 연구비를 지원 받아 개발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자신이 설립한 바이오기업 툴젠으로 이전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