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미중 갈등 상황에서 '균형외교'에 고심하고 있다. 자국에서 열린 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 공산당의 위협'을 거론하며 선명한 대립각을 세운 미국과 달리 가듭적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신중한 태도를 보인 이유다.
일본 언론들은 7일 쿼드 외교장관 회의와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와중에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 4개국 장관이 한 데 모인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 공동성명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중국 견제'라는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결속을 과시했다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은폐해 사태가 악화했다"고 주장했고,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해선 "4개국이 협력해 중국 공산당의 착취와 위압을 막아내자"고 역설했다. 시종일관 중국에 날 선 메시지를 쏟아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기류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장관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의 중심축인 4개국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중국을 별도로 언급하진 않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도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에서 미일동맹 강화와 인도ㆍ태평양 구상 실현을 위한 협력을 언급했을 뿐이다.
이는 경제ㆍ안보분야에서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되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해선 중국과의 협력을 추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책기조와 맞닿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2016년 인도ㆍ태평양 구상을 제안했지만 2018년 방중 이후 일대일로(육상ㆍ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대한 협력 의사를 밝혀 왔다.
스가 정권 입장에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중일관계 안정이 필수다. 실제 스가 총리는 중국과의 무역ㆍ투자 확대, 관광 분야 협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그는 관방장관 시절 '관광입국'을 내세워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썼다. 자민당 총재선거 때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의 '동아시아판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구상을 반(反)중국 포위망으로 규정하며 반대했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대결 구도를 강화할 경우 스가 정권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미국은 쿼드에 한국ㆍ베트남ㆍ뉴질랜드 등을 호함시켜 대중 포위망을 확대할 태세다. 이에 대해서도 일본은 자국이 주도한 인도ㆍ태평양 구상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점을 부각시키는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다. 아베 정권에서 관저 외교를 주도했던 가네하라 노부카쓰(兼原信克) 전 국가안전보장국 차장은 쿼드 회의의 의도에 대해 "중국을 포위하거나 중국과 대결하자는 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