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옛날의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14년 만에 TV에 출연해 공연한 가수 나훈아(70)가 정부를 겨냥한 듯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쏟아냈다.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30일 밤 방송된 KBS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그는 2시간 반 동안 30여곡을 쏟아내는 한편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속내를 드러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언택트 공연을 결심했다는 그는 공연이 종반에 다다를 무렵 “여러분 우리는 지금 힘들고 많이 지쳐있다”면서 나라를 지킨 것은 왕이나 대통령이 아니라 유관순, 논개, 윤봉길ㆍ안중근 의사 같은 “보통 우리 국민이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에 잘 대응하는 한국에 세계가 놀라는 것도 “우리 국민들이 말을 잘 들어서”라고 했다.
앞선 공연 초반부 발언에선 “의료진 여러분이 우리의 영웅”이라며 “의료진 여러분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대한민국을 외쳐달라”고 주문했다. 직접적으로 정부를 비판하진 않았지만 “국민의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말로 속마음을 일부 밝혔다. KBS에 대해서도 에둘러 쓴소리를 남겼다.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 기대하세요. KBS 거듭날 겁니다.”
잠시 인터뷰어로 출연한 김동건 아나운서가 정부 훈장을 사양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세월의 무게도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을 가슴에 달거나 목에 달게 되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겠냐”며 “노랫말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훈장을 받으면 그 무게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답했다.
자신과 관련한 루머나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언론 매체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저를 보고 신비주의라고 그러는데 가당치 않습니다. 언론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이 가슴에 고갈된 것 같아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잠적했다고 은둔생활 한다고 하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하죠. 신곡을 만들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8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데 1년 동안 안 보이면 또 잠적했다고 하고 신비주의라 하고 이렇게 난리를 칩니다. 이제는 뇌경색에 걸려 말도 어눌하게 하고 걸음도 잘 못 걷는다고 합니다. 내가 똑바로 걸어 다니는 게 미안해 죽겠습니다.”
나훈아의 이번 언택트 콘서트는 지난달 23일 진행했다. KBS는 미리 신청을 받은 뒤 1,000명을 선정해 온라인으로 공연을 관람하도록 했다. 전국 각지의 팬들은 물론 호주, 일본, 덴마크, 짐바브웨 등 해외에 있는 교포들도 공연을 관람했다.
나훈아는 은퇴 계획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노래를 몇 살까지 부를 것이냐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질문에 그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내려올 자리와 시간을 찾고 있다”면서 “이제는 내려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내려와야 할지, 언제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할지 찾고 있다. 늦어질 수도 있지만 그리 길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KBS홀 무대에 대형 배 세트를 띄워 '고향으로 가는 배'로 화려하게 무대를 연 그는 1부 ‘고향’, 2부 ‘사랑’, 3부 ‘인생’을 통해 '고향역' '모란 동백' '물레방아 도는데' '머나먼 고향' '18세 순이' '사랑' '잡초' '무시로' '청춘을 돌려다오' '비나리' '영영' 등 스무 곡이 넘는 히트곡에 신곡 '명자' ‘테스형’ 등도 선보였다. 일흔에 접어든 나이에도 단 한 차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2시간 반 동안 열창했다. 무대 위에서 세트나 출연진을 가림막 삼아 의상을 갈아 입는 대담한 연출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레전드’의 TV 무대 복귀에 KBS는 아낌 없는 물량 지원에 나섰다. 무대에 오른 합창단만 4팀에 총 100명이 넘고, 안무에도 1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하모니카를 연주했고 피아니스트 진보라, 하피스트 하와, 헤비메탈 밴드 메서드, 그룹 빈시트의 기타리스트 송지아, KBS 관현악단, 광개토 사물놀이 예술단, 한국전통 타악그룹 IN풍류 등이 거장과 호흡을 맞췄다.
앞서 나훈아는 콘서트를 준비하며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힘들 때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언택트 공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 별도의 출연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3일 밤 10시 30분 공연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만의 외출'을 방송한다.
실시간 시청률 조사회사 ATAM에 따르면 30일 오후 8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방송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실시간 시청률은 14.46%로 집계됐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21.23%였다. ATAM은 서울 수도권 700가구를 기준으로 시청률을 집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