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멩질상에는 카스텔라 올려요”

입력
2020.10.01 06:00
쌀이 귀해 보리로 만든 ‘상외떡’ 만들어 
제빵기술 발달 후 롤케이크 등으로 대체 
제주(祭酒)도 술과 감귤주스 함께 사용



카스텔라, 롤케이크, 단팥빵, 빙떡, 옥돔, 한라봉, 감귤주스. 제주지역 명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수음식들이다. 하지만 제주로 시집을 오거나 장가를 온 타 지역 출신들은 처음 마주할 때 생소하게 여기는 제주 문화 중 하나다. 고인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들을 차례상 등에 올리기도 하지만, 이들 제수음식들은 제주 어느 집에서든 볼 수 있는 보편화된 풍경이다. 이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생긴 독특한 음식문화다.

제주 차례상에 카스텔라 등 빵이 차례상에 올리게 된 유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제주는 땅이 화산토인 탓에 벼농사가 거의 되지 않았고, 육지와 교류도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예로부터 쌀이 귀했다. 이 때문에 귀한 쌀로 만든 떡 대신 술빵과 비슷한 ‘상외떡’(보리가루 등에 막걸리를 부어 반죽, 발효해 만든 빵) 등이 차례상에 올렸다. 그러다 70년대부터 제빵기술이 발달한 뒤에는 상애떡을 대신해 단팥빵을 비롯해 카스텔라나 롤케이크가 차례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 때문에 명절이나 제삿날 등에는 카스텔라 등을 선물로 사들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祭酒)도 독특하다. 제주로 술과 함께 감귤주스 등 음료수를 함께 사용한다. 예전에는 제주의 전통음료인 ‘감주’(차조식혜)를 사용하다, 주스나 음료수로 대체됐다.




추석 명절에는 제주에서도 송편을 만들지만, 모양은 사뭇 다르다. 타 지역의 송편은 반달 모양이지만, 제주의 송편은 보름달처럼 둥그렇게 만들어 가운데 부분을 살짝 눌러주는 게 특징이다.

기름떡도 테두리가 톱니바퀴 모양인 둥근 떡본을 평평한 반죽에 눌러 모양을 떠서 기름에 지지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려 놓아 고소함과 단맛을 함께 느끼게 한다. 송편은 해와 달을, 기름떡은 별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다.

명절과 제사, 잔치 등 큰일이 있을 때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빙떡이다. 메밀가루를 물에 묽게 반죽해 둥글게 부친 뒤 소금으로 간을 한 무채를 넣고 계란말이처럼 돌돌 말아 만든 전병이다. 무채를 넣은 이유는 메밀이 갖고 있는 독성을 중화하기 위한 것으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차례상에 오르는 과일도 타 지역과 좀 다르다. 사과나 배 외에 제주에서 특산품인 감귤을 비롯해 한라봉, 천혜향 등 다양한 귤들이 사용된다. 예전에 제주에서 많이 재배됐던 파인애플과 바나나 등을 통째로 올리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명절을 쇠는 방식도 남다르다. 설날은 ‘정월멩질’(1월 명절), 추석은 ‘팔월멩질’(8월 명절)이라고 부른다. 명절에는 여러 친족집을 돌아다니며 세배하거나 인사하러 가는데, 이를 제주사투리로 ‘멩질 먹으레 간다’고 한다. 아침 일찍 친척들이 모여 미리 정한 순번대로 집집마다 방문해 차례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종손 집에 모두 모여 제를 지낸다. 또한 벌초도 추석 2∼3주 전에 친족들이 모여 ‘모둠벌초’를 하기 때문에 추석 당일에는 성묘를 가지 않는다.

김영헌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