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규탄 자제' 문 대통령 "비극적 사건, 남북 대화 계기 되길"

입력
2020.09.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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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군사 충돌, 구조 협력 위해 군사통신선만큼은 복구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서는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며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첫 번째 공개 입장 표명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한 직접 규탄은 자제했다. 대신 남북 군사통신선 복구를 거듭 요청하며 이번 사건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유가족들의 상심, 비탄에 깊은 애도와 위로”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ㆍ보좌관회의 모두발언을 시작하자마자 “매우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가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됐는지 경위와 상관없이 유가족들의 상심과 비탄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조의를 전했다. "경위와 상관 없이"라는 표현을 쓴 건 A씨의 자진 월북 여부가 쟁점인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A씨의 희생을 막지 못한데 대해 “대단히 송구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받은 충격과 분노도 충분히 짐작하고 남는다”며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단히 미안하다’는 김정은 위원장 뜻 각별”

문 대통령은 “아무리 분단 상황이라고 해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면서도 북한을 향한 메시지는 최대한 절제했다. 대신 “이번 비극적 사건이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단절됐던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가 책임 있는 답변, 조치를 요구한 지 하루 만에 북한이 통지문을 보내 사과하는 등 대화의 물꼬를 틀 최소한의 여건은 조성됐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판단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서 곧바로 직접 사과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 위원장도 이번 사건을 심각하고 무겁게 여기고 있으며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평화 유지할 최저선, 어떤 경우에든 지켜 나가야"

북측이 문 대통령이 거듭 요구한 ‘남북 공동조사’를 수용한다면 남북 군사통신선 복구ㆍ재가동 등의 논의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남북 관계를 올해 6월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전 상황으로 복원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러면 4ㆍ27 판문점선언, 9ㆍ19 평양공동선언ㆍ군사합의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의 성과를 지켜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당장 제도적인 남북 협력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선은 어떤 경우에든 지켜 나가야 한다”며 ‘최저선’을 언급한 데서 문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돌이켜 보면 기나긴 분단의 역사는 수많은 희생의 기록이었다. 이번 사건과 앞으로의 처리 결말 역시 분단의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라며 “비극이 반복되는 대립의 역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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