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입력
2020.09.27 14:00
21면

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줄리어드 음악원 입학 소식과 함께 "미국은 언제 들어가나요?" "수업은 언제 시작하죠?" "부모님도 함께 가시나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음악원 입학과 함께 나의 유학생활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유학을 꿈꾸는 예비 음악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나는 한국에 있다.

줄리어드 음악원은 9월에 신학기가 열린다. 이미 수업은 시작됐다. 다만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에 제때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 측에서 9월부터 내년 3월까지의 기간을 3개 블록으로 나눴다. 나는 1, 2블록 기간 동안 한국에서 화상수업으로 공부하다가, 3블록이 시작되는 내년 1월 초 미국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물론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간다.

줄리어드 음악원은 원래 음악원 근처에 사는 미국 학생들도 첫 해는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해뒀다. 다 함께 겪어내야 할 시간을 설정해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상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직접적인 건, 미국 시간 기준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에야 수업이 끝날 때도 있다. 낮밤이 뒤바뀐 생활이다. 어쩔 수 없다지만, 내년 1월에는 직접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될 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것을 잃는 도중에도 하나는 얻는다던가. 좋은 점도 있다. 12월까지, 그래도 한국에서는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 미국 유학 규정상 음악대학에 입학한 1학년생은 미국에서 연주할 수 없다. 한국에서 연주하는 건 가능하지만, 수업 일정이 워낙 빡빡하기 때문에 규정상으론 가능할 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코로나19로 화상수업을 하는 덕에 한국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연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

2017년 7월 평창대관령 음악제 음악캠프에 참가했다. 그전까지 한번도 음악캠프에 참여 해보지 못했던 나로선 큰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내 사정을 잘 아시는 신수정 서울대 교수님 추천으로 손열음 언니와 베토벤 전문가로 이름 높은 스테판 코바셰비치 선생님께 레슨받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CD에서나 그들 연주를 접했던 나에겐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협주곡 콩쿠르 우승자 연주를 마친 뒤 무대 뒤에서 스테판 코바셰비치 선생님은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자 왕도 영국을 들르면 자신에게 레슨을 받으러 온다고 하면서 내게도 흔쾌히 "런던에 오게되면 레슨을 받으러 와도 좋다"고 제안하셨다.

거기다 2018년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 된 손열음 언니는 내게 ‘솔리 데오 글로리아’라는 프로그램으로 독주회를 열수 있는 기회를 줬다. 게다가 평창대관령음악제 협주곡 콩쿠르 우승자 연주에서 지휘를 해주신 고이치로 하라다 선생님은 2018년 이시가와 뮤직캠프 라이징스타 연주를 제안해 주셨다. 그리고 그해 이시가와 뮤직캠프 콩쿨에서 우승하면서 지난해엔 다시 같은 뮤직캠프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작년엔 뮤직캠프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그리고 지휘자로서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를 가르친 미쉘 소그니 선생님을 만났다. 캠프기간 동안 세 번의 수업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내년 조지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곡을 포함한 독주회를 제안해 주셨다. 얼마 전 그 분이 보내주신 악보를 받았다.

3년 전 평창대관령 음악제 하나가 이렇게 많은 인연을 이어주고 있다. 다음을 계획하면서 현재의 일을 했던 것이 아니다. 오직 주어진 순간에 집중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할 수 있게 된 올해 한국 공연. 이 공연들은 나를 다시 어디로 데려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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