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 적군으로부터 '항복' 선언과 문서를 받기 전까지 이긴 것이 아니다. 전쟁 중 외형상 판세가 불리하더라도 게릴라전을 통해 적군에 타격을 입힐 수 있고 결국 승리도 가능하다. 베트남전이나 걸프전 스토리가 아니다. 2020년 7월부터 3개월간 미국과 중국, 그리고 전 세계 비즈니스를 휩쓸고 있는 글로벌 소셜미디어 틱톡(Tiktok) 얘기다. 인수했으나 인수하지 않았고 매각했으나 매각하지 않았다. 넘겼으나 넘기지 않았고 가져왔으나 가져오지 못했다. 마지막 결론이 어떻게 펼쳐질지 9월 25일(현지시간) 시점에서도 불확실하다. 미중 ‘틱톡’ 전쟁의 시작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30일 “9월 20일까지 틱톡을 매각하라. 아니면 틱톡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고 행정명령에 사인하며 시작됐다. 이 전쟁의 결말 부분은 지난 9월 13일부터다.
지난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즈(NYT) 등 미 언론은 오라클이 “바이트댄스(ByteDance: 틱톡을 서비스하는 중국 모기업)의 신뢰하는 기술 파트너로 선정됐다”며 틱톡 인수의 우선협상 대상자가 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틱톡 인수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바이트댄스로부터 틱톡을 MS에 매각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인수 시도 철회를 공식화했다. 이 시점에서 시장은 오라클이 틱톡을 인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전쟁이 일단락된 줄 알았다.
그러나 오라클과 바이트댄스는 발표 당일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MS와 컨소시엄으로 틱톡을 인수하려 했던 월마트가 MS가 탈락하자 오라클에 붙었다. 승패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휴전’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5일 후인 지난 18일 나왔다.
오라클과 월마트는 틱톡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와 함께 텍사스주에 ‘틱톡 글로벌’을 설립하고 이 회사는 청년 등을 위한 교육 기금에 50억 달러(약 5조 8,000억원)를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틱톡 글로벌의 이사진 5명 중 4명은 월마트 CEO 등 미국인이 맡고 새로운 틱톡 지분의 20%를 나눠 갖게 된다. 기존 미국 투자자들의 지분까지 합치면 틱톡 전체 지분의 53%를 미국이 보유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업가치는 약 600억달러이며 뉴욕증시에 상장(IPO)을 추진하면서 완전한 미국 기업으로 탈바꿈시킨다는 합의도 미 주요 언론에 보도됐다.
이어 19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와 “새로운 틱톡은 중국과 무관한 새 회사다. 새 회사는 최소 2만5,000명을 고용한다. 미국인을 위한 교육전용기금에 50억 달러 기부도 내가 요구한 것이다”라며 기자들 앞에서 자랑했다.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패권 전쟁 중에 미국이 완벽한 승리를 거뒀으며 ‘틱톡 글로벌’은 전리품이 됐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중국이 하루 만에 역습을 감행한다. 바이트댄스가 21일 성명을 내고 이 보도를 공식 부인한 것. 바이트댄스는 “뉴스를 통해서 50억 달러 교육 기금 소식을 처음 들었다. 틱톡 글로벌은 바이트댄스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로 미국에 본부를 두게 된다. 기업공개 전 투자를 거쳐 바이트댄스의 지분율은 80%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바이트댄스는 틱톡을 매각하지 않았으며 미국 대기업(오라클, 월마트)의 투자를 받아 ‘글로벌 회사’로 분사시켰다는 뜻이다. 바이트댄스는 틱톡을 그대로 소유(통제권)하고 핵심 기술(알고리즘)도 중국 국경을 넘지 않는다. 다만 데이터 저장과 운영을 오라클이 할 뿐이며 커머스로 확장하기 위해 월마트를 끌어들였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 삼아 ‘틱톡 글로벌’이란 600억달러 가치의 기업을 탄생시킨 중국의 역습 성공 선언이다.
승전국 리더인 줄 알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얼굴을 바꿨다. 그는 “그들(오라클)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거래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0대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모바일 댄스, 립싱크 앱인 틱톡은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패권 전쟁의 인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 유출’을 이유로 11월 3일 미 대선에 활용하려 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 오라클, 월마트는 새 법인 ‘틱톡 글로벌’을 공화당의 상징과 같은 텍사스주에 둔다고 발표했다. 틱톡의 미국 본부는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칼버시티에 있다. 이미 1만명 가까이 고용했으며 디즈니에서 차기 회장 후보로까지 언급되던 캐빈 마이어를 CEO로 영입한 바 있을 정도로 알고리즘 기반 ‘콘텐츠’ 중심 소셜미디어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틱톡 글로벌이 탄생하면 기존 인력도 모두 텍사스주로 이동해야 해서 인력 유출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텍사스주가 선택된 것은 사업성이나 기업가치보다 ‘표심’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바이트댄스도 ‘인질’임을 감추지 않았다. 틱톡의 정보 유출 우려가 나오자 “우리는 민간기업이다. 정보 유출은 없었다. 증거를 대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매각을 해야 하자 장이밍 창업자가 근무한 바 있는 MS에 매각하려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나서자 매각 작업이 중단됐고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오라클이 우선 협상 대상 기업이 됐다. 중국 정부의 주도 아래 매각 작업은 회사 구조조정으로 변했다. 중국은 ‘민간기업’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중국 정부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틱톡은 무엇을 보유하고 있기에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패권 전쟁의 인질이 됐을까? 바로 ‘알고리즘’ 이란 디지털 시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틱톡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틱톡 대항마인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릴스를 내놨고 유튜브도 ‘쇼츠(Shorts)’라는 서비스를 공개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Z세대에게 틱톡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도 “나의 딸도 페이스북을 안 쓰고 틱톡을 쓰고 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는 틱톡의 콘텐츠 추천 그리고 이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이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중국 내에서 맞춤형 뉴스 추천 서비스(터우탸오)로 상당한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틱톡 챌린지 등을 통한 바이럴 확산 전략과 이용자들이 쉽게 모바일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하는 도구 등은 후발 회사들이 따라오기 힘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MS가 바이트댄스로부터 틱톡 인수협상에서 제외된 이유도 MS가 이용자보다 ‘알고리즘’ 인수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틱톡 인수전의 양상이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도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수출금지 및 규제대상 기술 목록을 새롭게 갱신하면서 알고리즘을 해외에 넘기지 못하도록 하면서다. 바이트댄스는 중국정부의 승인없이 틱톡의 핵심 알고리즘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면서 중국이 역습의 기회를 잡았다.
평범한 미국인들도 이제 중국 기업들도 디지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공할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홍콩 보안법 제정으로 홍콩의 민주 인사 체포 등이 이어지면서 중국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잃었다.
때문에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계속되며 틱톡 압박도 계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동맹 국가와 함께 중국을 압박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즉, 미중 디지털 패권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인질(중국기업 또는 미국기업)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