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은 지난 2013년 ‘절필’을 선언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7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바뀌자 그제야 펜을 다시 쥐었고, 시집을 내놨다. 시집 제목은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시를 쓰기 시작한 안 시인의 심정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그래서일까. 22일 시집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안 시인은 밝았다. 지난 몇년 간을 “시를 쓰지 않는 4년간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더 행복했다"고도 말했다.
탄핵과 더불어 안 시인에게 가장 큰 변화는 지난 2월 40여년간 살았던 전북을 떠나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돌아갔는 사실. ‘연못을 드리다’와 ‘꽃밭의 경계’ 같은 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쓴 시다. 안 시인은 “정치색이 다른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는데, 그런 건 문제 되지 않고 그냥 마당에 돌담 쌓고 나무 심고 꽃밭 만들며 지냈다”고 말했다.
안 시인은 이제 본격적인 ‘예천 사람’이 되기 위한 애쓰는 중이다. 고향을 알리기 위해 ‘예천 산천’이라는 잡지도 직접 만들었고, 예천의 한 고등학교의 문예반에서 학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안 시인이 그 중에서도 특히 고심 중인 문제는 바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일이다.
“제가 살았던 곳이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서 400m 떨어진 강변마을이에요. 은모래가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사대강 사업으로 상류에 영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은모래 강변이 없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이걸 되살릴 수 있을까 모색 중입니다.”
1981년 등단한 시인은 시가 지닌 엄청난 힘을 믿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시에 있다고 믿었다. 절필 선언 역시 그 연장선장에 있다. "시로 맞서지 않고 시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맞서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고향에 내려와서일까. 이제는 그 생각을 조금 내려놨다 했다. “80년대에 제 머릿속엔 민주화, 통일, 노동해방 같은 단어가 꽉 차 있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작고, 느린 것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걸 시로 쓰는 게 시가 해야 될 또 다른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는 마음이 참 편합니다. 유년의 공간으로 돌아왔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지금부터 새로운 유년을 살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