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과 의료진이 함께 운영하는 동물병원... "사람도 동물도 건강한 세상 꿈꿔요"

입력
2020.09.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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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2300여명, 개ㆍ고양이 동물대표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신뢰 가는 병원ㆍ합리적 진료비 추구 
길에 사는 동물들 치료도 지원

서울 마포구의 주택가에 자리잡은 한 동물병원. 매일같이 개와 고양이들이 들락거리는 평범한 동물병원 같아 보이지만, 여기는 특이한 공동체다. 주인이 무려 2,300명에 달하고, 사업의 40% 이상이 공익 목적이다. 안락사 위기에 처해 있다 구조된 비글 '대니'와 불법 브리더로부터 구출된 뱅갈고양이 4형제가 공동 동물대표를 맡고 있는 이 곳은, 세계 첫 동물병원 협동조합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우리동생)'이다.

우리동생은 조합원들이 직접 출자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동물병원이다. 동시에 지역사회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동물 의료나눔 활동이나 유기동물 치료 활동, 반려인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활동도 병행한다. 한 마디로 반려인들과 의료진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 내 반려동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만난 김현주(41) 우리동생 상무이사는 우리동생을 "내 반려동물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동생의 출발은 '동물병원도 사람 병원과 마찬가지로 사회 공공영역에 포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의료보험과 표준화한 가격 체계가 없는 동물병원 시장은 '부르는 게 값'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어떤 치료를 하냐에 따라, 동물 종에 따라, 또 체구가 얼마나 크고 작은지에 따라 진료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떠올린 것은 반려인과 의료진이 함께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는 운영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 상무이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전국 25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이 함께 병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는데, 동물병원에도 이런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문제의식을 모아 2013년 창립했고, 2015년 드디어 첫 병원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여러 반발에 부딪혀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다. 수의사들 사이에서 예민한 문제인 가격 체계가 수천 명의 조합원들, 즉 소비자들에게 공개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표현한 사람들도 있었고, 전례가 없는 공동체인 만큼 관계 부처의 인가를 받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김 상무이사는 "사회적 협동조합 동물병원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처음에는 여러 오해와 불신이 많았던 것 같다"며 "우리동생은 무조건 수가를 낮추는 게 목표인 곳이 아니고, 병원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지 조합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곳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동생은 출자금과 조합비를 낸 조합원들에게는 진료비를 다소 낮은 조합원가로 제공하고 있으며, 수가는 매해 총회를 통해 재조정된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병원에서 자신의 의사가 투영된 합리적인 진료비를 내고 반려동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김 상무이사는 "다만 동물병원 운영상 손실이 생길 땐 조합원들이 이를 메울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우리동생이 사회적 협동조합인 만큼,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시작한 저소득주민 반려동물 지원 활동이 대표적이다. 김 상무이사는 "저소득층이라 해서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동물병원 문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다 보니, 수십만원에 달하는 동물 진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병을 키우는 경우가 다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층은 정보 접근성이 낮아 잘못된 지식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경우가 있어 도움이 더 절실하다. 김 상무이사는 "반려동물이 예쁘다고 산책 대신 매일 업고 다니는 분도 계시고, 좋은 음식이라고 사료 대신 국밥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분들을 위해 반려동물 치료 도움과 교육 등을 병행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우리동생은 일부 지자체에서 추진했던 '독거노인에게 반려동물 입양 보내기'와 같은 정책에 크게 반대하고 있다. 당장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괜찮지만, 아프거나 돌아가시는 경우 반려동물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거노인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김 상무이사는 "실제로 한 할머니가 두 달간 입원을 해야 했는데, 할머니 입원비는 60만원 정도인 데 비해 반려동물 호텔비가 240만원에 육박해 아예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본인 몸 돌보기 힘든 분들에게 20년씩 살아가야 하는 반려동물을 온전히 맡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우리동생은 길에 사는 동물들과 유기동물을 위한 치료도 지원하고 있다. 2016년 24마리로 시작한 지원 활동은 지난해 102마리로 늘었다. 작년 96마리를 대상으로 한 저소득층 반려동물 치료 지원 사업까지 포함해 총 의료나눔 금액은 2018년 8,884만원, 지난해 4,059만원에 달했다. 작년엔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김 상무이사는 현재 동물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 수준을 '과도기'라 보고 있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은 시기를 넘어, 동물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자 가족이라고 받아들이는 시기로 향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반려견 동물등록이 의무화했으며, '펫티켓(반려동물 에티켓)'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김 상무이사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분명히 발전하고 있다"며 "동물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동생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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